이달 초 충주에서 열린 2004코리아오픈 배드민턴 여자단식 준결승. 전재연(한국체대)이 독일의 수후아이엔을 꺾고 결승에 오르자 김학석 대한배드민턴협회 부회장은 그 자리에서 지갑을 열었다. 우승 상금이라며 김 부회장이 전재연의 손에 쥐어준 돈은 50만원.
우승하면 2만 달러 이상의 상금을 챙기는데 굳이 김 부회장이 지갑을 턴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전재연은 중 2때 사고로 부모를 모두 잃었다. 이 충격 때문인지 전재연은 포천고 2년때 태극마크를 달 만큼 재능이 뛰어났지만 번번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무너지곤 했다. 마음속 깊이 자리잡은 공포심이 그의 발목을 잡았으리라는 게 관계자들의 말.
우승도 하기 전에 우승 격려금을 쥐어준 김 부회장의 ‘돌출행동’은 전재연의 승부욕을 살려주기 위한 비상수단. 그러나 전재연은 결승에서 중국의 장닝에게 져 준우승에 그쳤다.
그 전재연이 25일 끝난 아시아선수권대회 여자단식에서 우승했다. 개인통산 첫 국제대회 우승이었고 방수현이 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우승한 후 8년 만의 여자단식 우승이었다니 그 기쁨이 얼마나 컸을까.
한 가지 기쁨이 더 있다. 우승상금을 가불해준 김 부회장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은 기쁨이 그것이다. 배드민턴인들이 가족적이라는 말을 듣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