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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역사와의 대화]‘대계집’으로 본 목판제작 과정

입력 | 2004-04-26 18:42:00

안동 선비 이주정의 문집인 '대계집'.


‘유교 10만 대장경 수집 국민운동’ 과정에서 재발견된 기록문화유산은 민족 전통문화를 생생하게 증언하는 보배다. 수집된 자료들 중 일부를 발췌해 소개하는 시리즈를 매주 화요일 게재한다.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의 제작연대(751년)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 목판인쇄술이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통일신라시대였다. 고려시대에 이미 대장경을 두 차례나 만들었고, 조선시대에 이르러 유학자들의 문집출간이 일반화되면서 목판 인쇄문화의 황금시대를 이뤘다.

하나의 목판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많은 공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판각(板刻)부터 제본(製本)까지 상당한 시간과 경비가 들었다. 고성이씨(固城李氏) 임청각파(臨淸閣派)의 선비 이주정(李周禎·1750∼1813)의 문집 간행 경위를 그 증손자대에 기록한 ‘대계집간역시일기(大溪集刊役時日記)’를 보면 그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대계집’은 모두 3책인데, 이를 위해 판각된 목판의 수는 140장이다. 판각용 원고인 판하본(板下本)의 제작과 교정을 맡은 전문가 2명과 판각 기술자인 각수(刻手) 3명이 동원됐고, 기간은 3년을 예상했으나 2년 반에 마친 것으로 돼 있다.

소요경비는 목판 1장당 2냥 8전이었다. 구체적인 지출항목은 “판값 1전을 비롯해 운반비 및 소금물에 삶은 비용 5푼, 판목 다듬기 및 마구리 작업 2전, 판각 비용 2냥 3전, 인부의 밥값 1전, 교정비 5푼”으로 기록돼 있다. 목판의 수가 140장이었으므로 총 392냥이 든 셈이다. ‘대계집’이 간행된 1884년 안동 인근 예천지역의 쌀 한 섬 값이 10냥이 조금 안 됐음을 감안하면, 이는 쌀 약 40섬을 살 수 있는 거액(쌀 1섬을 2가마니로 볼 경우 오늘날 1600만원 상당)이다. 여기에는 판각된 목판을 인출하는 데 드는 종이값과 그것을 책으로 엮는 비용은 빠져 있다. 문집 발간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든 셈이다.

‘대계집’의 발간은 삼대에 걸친 숙원사업이었다. 일기의 기록자인 증손자는 문집을 간행한 자신의 아버지(이주정의 손자)가 할아버지(이주정)의 유고가 아직 궤짝 속에 방치돼 있는 것을 애통해하던 끝에 집안 종형을 찾아가 “아버지(이주정의 아들)도 이 일로 고심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으니 도와달라”며 읍소했다고 적고 있다. 이처럼 민간에서 문집 출간을 위해 목판을 만든다는 것은 대단한 정성과 비용이 투입되는 일이었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우리나라 문집의 총량은 대략 3500∼4000종으로 추산되는데 이 가운데 99%가 조선시대의 문집이다. 따라서 1종당 평균 3책으로만 잡아도 조선시대에 출간된 문집의 수가 1만 책이 넘고, 1책당 목판의 수를 40장으로 계산하면 문집 출간용으로만 국한시키더라도 최소 40여만장의 목판이 판각됐음을 추산할 수 있다. 실제 판각된 목판 수는 이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다. 조선시대가 일궈낸 문화의 폭과 깊이는 선조들의 지적 자산에 대한 이런 열정이 집약된 결과다.

박원재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원·동양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