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끼리 부딪쳐 새 정치 판도를 낳은 총선이었다. 새 정치 지형은 새 바람을 예고한다.
새 여풍(여당 바람), 새 노풍(노무현 바람)의 풍향 풍속이 한국호(號)의 항로와 항속을 가를 공산이 크다. 또 다른 노풍(민노당 바람)도 변수다.
경제정책에 좌풍(좌향좌 바람)은 없을 것이라고 관료들은 애써 말한다. 과연 그럴까. 나라 안팎을 향해 서둘러 다짐하는 모습이 오히려 좌풍의 실체를 읽게 한다. 시장 참가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이런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부터 좌풍의 국가적 비용이 지불되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좌우 날개’ 따로 날갯짓하면▼
세계적 투자회사 모건스탠리 관찰자의 어제 민노당 방문은 한국시장의 변질 가능성에 대한 국제적 주목의 표출이다. 그는 민노당 핵심 인물이 투자회사를 투기회사라고 지칭한 사실도 놓칠 리 없다.
새는 좌우의 두 날개로 난다고 말하는 사람이 늘었다. 정치 경제 사회적 이념의 좌우 공존과 조화를 강조하는 수사(修辭)로 그럴듯하다. 문제는 국민을 위해 함께 이기기엔 현실이 그다지 단순하지 않다는 데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출자총액 제한제도 때문에 신규 투자를 포기한 사례들을 공개하며 이 제도의 해제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를 ‘개혁 거부’라고 받아치는 세력이 총선을 거치면서 더 강해졌다. 출자총액을 제한하자는 날개와 기업자율에 맡기자는 날개가 동시에 날갯짓 하면 ‘투자의 새’는 날아오를 수 있을까.
성장과 분배를 둘러싼 대립도 새 국면을 맞았다. 노무현 정부는 성장 분배 병행론을 펴며 출발했다. 사실상 분배에 무게가 실린 정책 선택의 신호였다. 노사 힘의 균형론이 친노(親勞)성향으로 흐른 것과 통한다.
그러던 정부는 급격한 성장 둔화로 분배가 더 악화되자 성장 우선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확실한 분배 우선을 주장하는 민노당의 기세가 대단하다. 여당 안에도 분배 중시 기류가 만만찮다. 총선 후 첫 당정회의에서 여당은 성장 개혁 조화론과 경제약자 배려론을 꺼냈다.
성장과 개혁의 조화를 누가 부정할까. 개혁 과잉이 가져다 줄 국가적 손실을 진지하게 성찰하려는 자세가 돼 있는지가 문제다. 개혁의 이름으로 창조적 변화가 아닌 파괴적 개악을 시도할 위험성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지난 정부 금융감독위원장으로 경제개혁을 주도하면서 한때 재벌해체론을 빼 들었다. 벤처경제가 재벌경제의 대안이라는 신경제론이었다. 그 신경제론이 벤처거품과 함께 꺼지는 데는 몇 년 걸리지 않았다.
지난 정권이 밀어붙인 개혁정책의 부산물 가운데 하나가 오늘의 투자 부진이다. 그나마 한국에 투자하는 외국인이 남아 있는 것은 정부를 신뢰해서라기보다 우리 기업들의 가능성을 더 믿기 때문이라고 볼 일이다.
약자 배려 역시 모든 국민의 기본권 차원에서나 사회 통합을 위해서나 절실하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방법이 숙제다. 일자리 만드는 성장 없이는, 새로운 국부의 창출 없이는 어떤 분배정책을 써도 경제 약자를 줄이기 어렵다. 여전히 중고도(中高度)성장을 하지 않고는 지금의 약자에게 스스로 먹고살 수 있는 기회와 수단을 늘려 줄 수 없다. 성장이 멈추면 국가가 약자를 끌어안을 길이 사라진다.
▼모든 바람이 ‘선진화 바람’이길▼
새 정치 판도가 좌우 날개의 긴장을 높이고 있다. 경제정책의 목표와 우선순위에 대한 팽팽한 대치가 기업정책 노사정책 등의 혼선을 증폭시켜 ‘우왕좌왕하느라 되는 게 없었던’ 잃어버린 2003년을 연장, 악화시키지 않을까 두렵다.
어느 쪽 날개건 알았으면 한다. 새는 좌우 날개로 나는 것이 아니라 튼튼한 몸통으로 난다는 사실을. 한국경제의 강인한 몸통은 좌우 날개가 선풍(선진화 바람)에 수렴될 때 만들어질 수 있음을. 그리고 그것이 이 나라 이 국민이 살아남는 길임을.
정부 여당은 이제 책임 떠넘길 곳을 잃었다. 유권자의 선택은 여풍(與風)과 노풍(盧風·勞風)을 시험대에 올렸다. 칼부터 쓰고 보는 방식으로 나라를 실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세계의 흐름과 글로벌 스탠더드를 통찰하는 눈이 아쉽다.
배인준 수석논설위원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