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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엄마는 여자를…’ 동성애 엄마에 배운 사랑의 진실

입력 | 2004-04-27 17:30:00

스페인 영화 ‘엄마는 여자를 좋아해’는 엄마의 동성애로 소동이 벌어지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역설적으로 가족과 사랑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부각시킨다. 사진제공 프리비전


“스무 살 연하의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

아버지와 이혼 후 혼자 사는 어머니가 자신의 생일날에 모인 세 딸 앞에서 이렇게 폭탄선언을 한다. 세 자매는 비상이 걸린다. ‘성적 취향도 유전된다는데 혹시 내게도?’

연애 한번 못해본 둘째 딸 엘비라(레오노르 와틀링)는 어머니의 애인인 엘리스카를 유혹해 둘 사이의 틈을 벌여놓는데 성공한다. 엘리스카는 고국인 체코로 떠나고, 피아니스트인 어머니는 연주회에서 기절할 만큼 그녀를 그리워한다. 엄마를 통해 사랑의 의미를 깨달은 세 자매는 엘리스카를 데려오기 위해 체코로 향한다.

30일 개봉 예정인 스페인 영화 ‘엄마는 여자를 좋아해’는 일부러 짓궂은 척하는 모범생 같은 영화다. 언뜻 ‘동성애 엽기 한마당’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사실 체감 온도는 따스하고, 시선은 정직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관심을 갖는 대상은 성적 소수자의 권리나 타인의 취향이 아니다. 전통적인 가족의 틀을 조롱하고 해체함으로써 역설적으로 가족애라는 보편적 가치를 정면으로 부각시킨다. 이혼한 아버지마저 “엄마의 동성애는 입증된 사랑의 취향”이라며 딸들을 설득하고 나설 지경이니….

이 경쾌한 영화는 동성애자인 엄마보다 전전긍긍하는 세 자매에 더 초점을 맞춘다. 짐짓 엄마를 걱정하며 호들갑 떠는 자매가 종국에 발견한 진실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견고한 자기 보호막에 싸인 채 그들 스스로 외면해 왔던 사랑의 진정성이다. 만나는 남자마다 떠나보내야 했던 둘째 엘비라는 자괴감을 딛고 작가 미구엘에게 사랑을 고백하는데 성공한다.

영화의 끝부분은 발칙하지만 아름답다. ‘동성애’라는 사랑의 방법과 ‘가족’이라는 제도의 틀을 교배하고 절충해 만들 수 있는 마지막 아이디어에까지 이른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그녀에게’에서 식물인간이 된 무용수로 출연해 시종 말을 잃었던 와틀링은 이번 영화에서 180도 변신했다. 신경쇠약과 귀여움을 오가는 표정으로 속사포처럼 대사를 쏴댄다.

유쾌하고 밝은 화법의 영화에 굳이 엽기적이라는 혐의를 둘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 영화가 ‘동성애 버라이어티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엄마는 여자를 좋아해’라는 제목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한 아이디어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아빠는 남자를 좋아해’ 같은.

스페인의 여성 듀오 감독 다니엘라 페허만과 이네스 파리스의 장편 연출 데뷔작이다. 15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