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원혜영(元惠榮·경기 부천 오정) 당선자와 한나라당 박계동(朴啓東·서울 송파을) 당선자는 ‘30년 지기(知己)’다.
1975년 긴급조치 9호가 첫 발동됐을 때 시국 사건에 연루된 두 사람은 ‘감옥 동지’로 첫 인연을 맺었다. 나이는 원 당선자가 박 당선자보다 한 살 위였지만 그들은 막역한 친구로 지내왔다.
14대 국회에 민주당 소속으로 함께 등원한 두 사람은 당시 민주개혁정치모임을 같이했다. 특히 박 당선자는 1995년 ‘노태우(盧泰愚) 비자금’ 계좌를 폭로해 정치개혁의 물꼬를 트기도 했다.
두 사람은 15대 총선 직전 김대중(金大中) 총재가 민주당을 깨고 국민회의를 창당할 때도 ‘꼬마 민주당’을 지켰다. 당시 노무현(盧武鉉), 이부영(李富榮), 제정구(諸廷坵), 유인태(柳寅泰)씨 등이 그들과 함께했다.
두 사람의 정치적 행보는 199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갈라졌다. ‘수평적 정권교체’냐, ‘3김 청산’이냐를 둘러싼 시각 차이였다. 결국 원 당선자는 김대중 후보를 선택했고, 박 당선자는 민주당이 신한국당과 합쳐진 한나라당에 합류해 이회창(李會昌) 후보를 지지했다.
2002년 대선 때도 두 사람의 정치적 결별은 계속됐고 17대 국회에서 상대 진영으로 마주서게 됐다. 소속 정당이 다른 만큼 두 사람의 정치적 태도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특히 탄핵 정국에 대한 두 사람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원 당선자는 탄핵안 가결에 대해 “거대한 힘을 가진 야당 세력이 국민의 뜻을 무시한 것”이라며 “탄핵역풍은 한나라당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박 당선자는 “노 대통령이 정작 책임져야 할 친인척 및 측근 비리에 대해선 당사자가 아니라고 빠져나오고, 중앙선관위의 선거법 위반 결정까지 무시한 것은 권력의 오만”이라며 “꼭 탄핵을 해야 했느냐는 문제는 논란이 있지만 탄핵 사태까지 이르게 한 것은 전적으로 대통령 책임”이라고 반박했다.
개혁 노선에 대한 견해차도 팽팽하다.
박 당선자는 “1995년 개인소득 1만달러 달성 이후 경제가 제자리인 데도 열린우리당은 경제분야 개혁의 청사진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원 당선자는 “개혁의 속도 논란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개혁의 노선과 방식을 놓고 건전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라고 맞받았다.
반면 이라크 추가 파병 문제에 대해 두 사람은 “이라크 상황이 변한 만큼 국회 차원의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정연욱기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