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저항세력에 납치됐다 풀려난 일본인 5명 중 한 사람인 자유기고가 야스다 준페이(安田純平·30)가 비난 여론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자신의 피랍이 정부를 곤경에 빠뜨리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시사주간지 타임 최신호(5월 3일자)에 실린 문답.
―인질에 대한 일본 내 부정적 여론에 놀랐나.
“놀라지 않았다. 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어 똑같은 대우를 받을 줄 알았다. 지금까지 단 한 건의 비난 e메일도 받지 않았다. 유일한 전화는 지바(千葉)의 한 여성이 자기 딸과 결혼해 달라고 건 것이었다.”
―정부의 구출 노력에 감사하는가.
“그것(구출 노력)은 정부의 임무다. 정부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고맙지는 않다.”
―언론이 왜 인질들에게 비판적이었다고 보나.
“처음 3명을 인질로 잡은 저항세력은 자위대 철수를 요구했다. 이라크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이 상황을 이용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나는 피랍이 정부를 곤경에 빠뜨렸다는 비난을 이해할 수 없다. 정부는 납세자인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왜 이라크에 가지 말라는 정부의 경고를 무시했나.
“진상을 아는 것은 시민의 의무다. 만일 모른다면 정부의 조치가 좋은지 나쁜지 판단할 수 없다. 알리는 것은 내 직업이며 국민이 정부를 지지하려면 정부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왜 인질이 됐으며 어떻게 풀려났나.
“그곳은 전쟁터로 외국인이 돌아다니면 금방 눈에 띈다. 특히 카메라를 휴대한 일본인은 쉽사리 첩자로 간주된다. 저항세력의 인도주의로 풀려났다. 총을 들고 있지 않은 것도 이유였다. 일본이 미국 원자폭탄의 희생국이며 도요타자동차를 만들었다는 점도 작용했다.”
이진기자 lee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