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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금융계 CEO ‘21세기 금융비전 포럼’ 열여

입력 | 2004-04-27 19:11:00


정부가 27일 금융계 CEO들에게 밝힌 ‘동북아 금융허브 추진전략’의 핵심은 한국을 자산운용업에 특화한 금융허브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1600억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과 110조원 규모의 연기금 등 풍부한 자금원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자산운용사의 거점을 한국에 유치해 싱가포르 홍콩 등을 따라잡겠다는 것.

이를 위해 1단계 시한인 2007년까지 한국투자공사(KIC)를 국제적 자산운용기관으로 육성하고 주식 채권 외환 시장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금융권 전문가들은 정부의 금융허브 전략이 지나치게 ‘비전’을 제시하는 데 치우쳐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비판했다. 또 자산운용업 중심으로 짜여진 전략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자산운용업 중심전략 문제없나=이날 포럼에 참석한 윤병철(尹炳哲) 전 우리금융지주회사 회장은 “정부 계획은 연기금 등의 운용을 외국계 자산운용사에 맡겨 외국 금융기관을 유치하려는 것인데 자산운용만으로 금융산업의 장기적 발전이 가능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금융계 일각에서는 “KIC를 설립해 외국펀드들에 자산운용을 맡긴다면 외국인들이 국내 금융회사를 인수하거나 투자하는 데 뒷돈만 대주는 꼴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현주(朴炫柱) 미래에셋 회장은 “정부는 외국인을 무조건 끌어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면서 “삼성전자나 현대차 등 국내 산업부문의 1등 기업들이 해외에 나가 경쟁을 통해 성과를 거둔 것처럼 한국의 자산운용사들이 해외로 나가 공격적 경영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허브 계획의 핵심인 KIC도 설립 단계부터 삐걱대고 있다. 재정경제부는 KIC의 최소 자본금을 2000억원 규모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나 기획예산처는 규모가 지나치게 크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100억∼200억원 규모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규제 및 법률 인프라 정비해야=경쟁 국가에 비해 높은 세율과 국제기준에 뒤떨어진 금융규제 등도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의 걸림돌로 꼽히고 있다.

이날 포럼에서 황영기(黃永基) 우리금융지주회사 회장은 “컨소시엄을 구성해 필라그룹을 인수한 윤윤수 필라코리아 회장이 서울에 본사를 두려고 했다가 금융 인프라 부족과 세금제도 등의 문제로 결국 홍콩에 본사를 세운 이유를 고민해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금융허브라는 장기비전은 탁상공론에 불과하며 높은 세금, 외국인 학교의 부족 등 당장 현실적으로 필요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계 컨설팅회사인 매킨지는 지난해 말 발표한 보고서에서 동북아 6대 도시의 금융허브 여건을 비교한 결과 서울이 싱가포르 홍콩 도쿄 상하이 등보다 낮은 5위에 불과하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김승유(金勝猷) 하나은행장은 “외국인을 유치하려면 매력적인 법률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면서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인터내셔널센터’처럼 선진국(영국)의 법률이 적용되는 특별구역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양만기(梁萬基) 자산운용협회장은 “정부는 외국인을 유치하기 위해 무조건 일방적인 인센티브를 주기보다 공정한 게임의 룰을 마련해야 하며 잘못하다간 외국인에게만 좋은 시장을 만들어줄 수 있다”면서 국내 금융업체에 대한 ‘역차별’ 가능성을 우려했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