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인간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 또는 그 밖의 견해, 민족이나 사회적 출신, 재산 또는 다른 지위 등 어떤 구별도 없이 모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 (세계인권선언문 제2조 중)
인권보호는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나는 인권이 있는 존엄한 존재’라는 자각이 인권이 지켜지는 사회를 만드는 토대다. 이번 회 ‘젊은 리더를 위한 민주시민강좌’에서는 한국사회의 인권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서울대 법대 안경환 학장(56)이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 사무국장(37), 숙명여대 경영학과 3학년 김선희씨(21), 서울 배화여고 2학년 박서린양(17)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사회적 소수는 단지 숫자의 문제 아니다
▽안경환 학장=‘인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어떤 건가요.
▽박서린=외국인노동자가 무시당하거나 신입사원을 뽑을 때 여성을 차별하는 일요.
▽김선희=장애인, 동성애자, 유색인종, 경제적 극빈자 등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생각납니다.
▽안 학장=소수자는 단순히 숫자만이 아니라 사회의 주류에서 소외당한 사회적 약자를 의미합니다. 인권은 기본적으로 소수자를 위한 것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하지요. 사회 제도는 다수 중심으로 돼 있어 소수자를 배려하고 있지 않거든요.
▽오창익 국장=중고교생들을 만나 얘기해보면 대개 외국인노동자, 학교 안 다니는 청소년들의 인권문제를 가장 심각한 것으로 꼽아요. 그런 얘기를 듣다보면 청소년들이 인권을 자신의 문제로 보지 않고 언론 등을 통해 만나는 ‘나와 다른 사람, 자선을 베풀어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구나 하는 걸 알 수 있죠. 인권은 특별한 누구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것인데….
▽안 학장=학생으로서 최소한 보장받고 싶은 게 있나요.
▽박=친구들이 교복, 두발제한 등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긴 하지만 이게 인권침해라는 인식은 잘 못하겠어요. 하고 싶은 게 많은데 꽉 짜인 교과과정에 맞춰 공부만 해야 하는 현실이 답답하기도 하고요.
▽안 학장=인권을 누구에게 요구해야 할까요.
▽김=국가가 아닐까요.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규율을 만들어 이를 국가에 위임했기 때문에 최소한의 기본적 인권보장은 국가에 요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안 학장=그렇다면 대한민국에 법이 있는데도 인권을 침해당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누가 어떤 식으로 문제제기를 해야 할까요.
▽김=인권 침해를 받는 사람들이 해야 하지 않을까요. 여성들이 불합리한 처우에 대해 목소리를 높임으로써 성차별을 상당부분 개선할 수 있었던 것처럼요.
토론 참석자들은 “일상의 인권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누구보다도 침해를 받은 당사자가 문제를 자각하고 사회적 논의를 제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장애인들이 여전히 타기 불편한 서울 지하철의 한 승강장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참석자들. 왼쪽부터 오창익 사무국장, 김선희씨, 박서린양, 안경환 학장. -김미옥기자
○ 인권보장은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어
▽안 학장=외국인의 인권을 어디까지 보장해야 할까요.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을 읽어보면 유대인 샤일록은 ‘유대인은 개다’라는 식의 모욕을 계속 당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네치아에서 무시하지 못할 재력을 쌓습니다. 이는 그가 외국인임에도 경제활동을 보장받았다는 걸 의미하죠. 그런데 세계적으로 왕성한 경제활동을 하는 중국인들이 경제활동을 제대로 못하는 나라가 한국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박=한국이 그만큼 외국인에 대해 배타적 사회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요.
▽안 학장=양심적 병역 거부자, 사회주의자 등 한국 사회에서는 생각과 사상이 다른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가 다른 제도보다 우수한 이유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포용하는 데 있어요. 그런데 서울과 지방의 차이, 특히 출신학교로 인해 소외받는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오 국장=저는 지방대를 졸업했는데 10여년간 인권운동을 하면서 정보가 유통되는 과정이 철저히 연고 중심이라는 걸 느꼈어요. 진보, 보수를 떠나 연고주의로 뭉쳐 있는 이런 현실에 대해 우리 모두가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박=중학교 때부터 교육 때문에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친구들이 있어요. 서울 내에서도 고등학교를 어디로 가야할지 신경 쓰는 친구들이 많죠. 강남으로 전학하는 친구들 중에서는 강남에서 사귄 선후배들이 나중에 사회적으로 상당한 지위를 가질 거라는 생각도 갖고 있더라고요.
▽안 학장=인적구성의 다원화는 공동체의 다양화를 위해 꼭 필요합니다. 각 대학이 장애학생을 특별전형으로 입학시키는 것도 소수자 보호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구성원의 다양성 확보라는 측면이 있습니다.
○ 인권운동의 일상적 실천은 시민적 의무
▽김=저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가르치는 지식봉사단에서 일하고 있는데요, 상당수 사람들이 도움받는 것 자체를 꺼리거나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럴 때면 과연 봉사가 그들을 위한 일인지 고민이 됩니다.
▽오 국장=노르웨이는 국민의 10%가 인권단체를 비롯해 환경, 교통관련 단체에 가입해 같이 일합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시민적 의무가 강조돼야 합니다.
▽안 학장=이제 일상생활에서 날씨 이야기를 하듯 보편적으로 인권 문제를 논의하는 시대가 시작됐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은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위한 욕망을 갖게 만들지요.
▽오 국장=탤런트 이승연의 위안부 누드에 분노했다면 위안부 할머니들이 매주 일본대사관 앞에서 벌이는 수요집회에 한 번 참석해본다든지,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은 많아요. 타인의 인권에 관심을 갖고 실천에 나설 때 나 자신의 삶도 더욱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정리=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인권문제를 다룬 영화와 책
●영화
▽여섯 개의 시선(감독 박찬욱 등·2003)=영화감독 6명이 용모차별, 왕따, 장애인, 아동학대, 외국인노동자 등을 소재로 인권문제를 조망.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감독 김유진·1991)=성폭행을 피하려고 정당방위로 폭력을 저지른 주부의 사건을 통해 여성에 대한 사회적, 제도적 편견을 고발.
▽오아시스(감독 이창동·2002)=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
▽기드온의 트럼펫(감독 로버트 콜린즈·1980)=극빈 형사피고인에게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를 최초로 인정한 역사적 판결을 담은 영화.
▽필라델피아(감독 조너선 드미·1993)=동성애는 병이 아니라 삶의 한 방식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영화.
▽아버지의 이름으로(감독 짐 셰리단·1993)=경찰의 공명심 때문에 투옥된 무고한 피해자의 이야기.
▽레인메이커(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1997)=대기업의 횡포에 맞서는 소시민을 변호하는 무명변호사의 이야기.
▽아미스타드(스티븐 스필버그·1997)=실제 판결의 재조명을 통해 노예제도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는 역사 드라마.
●책
▽사람답게 아름답게(차병직·바다출판사·2003)=동화 속에 나타난 인권 문제를 풀어쓴 이야기.
▽서울대 공익인권연구소 단행본 시리즈=양심적 병역 거부, 재외동포법, 성적소수자의 인권 등 한국의 인권 문제를 다룬 전문서.
▽국가인권위원회 간행 자료=인권 동화, 만화 등 알기 쉽게 쓴 계몽용 자료.
(추천:안경환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