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허영만 화백의 음식만화 ‘식객’의 주인공 성찬. 지금은 야채와 생선을 트럭에 싣고 전국을 돌아다니지만 한때 한식집 운암정의 후계자가 될 뻔했던 청년. 주변에선 그를 이 시대 최고의 조리사가 될 재목으로 꼽는다. 통 연락이 닿지 않아 그의 아파트 앞에서 꼬박 하루를 기다린 끝에 겨우 만날 수 있었다. 허 화백을 통해 꾸며본 성찬과의 가상 인터뷰.》
―동아일보에 연재되는 ‘식객’이 28일 400회를 맞았다. 단행본도 5권이나 나왔고 하루 인터넷 조회수도 30만건이 넘는다고 한다. 유명해진 건 인정한다. 하지만 독자들도 궁금한 게 많은데 이렇게 만나기 어려워서야….
“미안하다. 일부러 피한 건 아니다. 좋은 음식 재료를 찾아 방방곡곡 다니느라 연애할 시간도 없다. 기자라고 일부러 피한 건 절대 아니다. 내 여자친구가 잡지사 기자 아닌가.”
식객에서 그의 여자친구는 잡지 포인트에서 음식칼럼을 쓰는 김진수 기자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해주신 고들빼기김치다. 지금도 집에 갈 때면 꼭 언제 내려간다고 연락을 한다. 그건 고들빼기김치를 해놓으라는 뜻이다. 사람은 어머니 음식으로 처음 길들여지는 법이다. 고향 맛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고들빼기김치다.”
그는 전남 해남이 고향이다. 나이를 물어보진 않았지만 김 기자보다 다섯 살이 많다고 하니 올해 서른셋이다. ‘어렸을 때’라고 하면 20년 전쯤을 말하는 것 같다.
“그때만 해도 고들빼기는 워낙 써서 반나절 정도 소금물에 우려내고 나서야 김치를 담았다. 요즘은 사람이 재배를 한다고 하는데 별로 쓴 줄 모르겠다. 제대로 맛이 안 난다. 억지로 키운 것들은 계절을 담지 못하는 것 같다.”
―바닷고기도 기르는 세상인데 고들빼기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있나.
“회를 좋아하는 편인데 양식한 생선은 도무지 못 먹겠다. 푸석푸석하니 먼지 맛이 나는 것 같다. 그래서 굳이 생선회가 먹고 싶을 땐 잡어를 먹는다. 잡어는 양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군. 하나 배웠다. 그러고 보니 육식을 썩 즐기지 않는 것 같다. 식객에도 고기 먹는 얘기는 별로 안 나온다. 백화점에 쇠고기 납품했던 얘기가 전부다.
그가 목소리를 낮추더니 “만화에 그렇게 나오는 건 허영만 화백이 육류를 즐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건강 체질로 소문난 허 화백은 야채와 나물, 생선을 많이 먹고 육식은 피한다고 했다.
―투신하겠다고 한강대교 교각에 올라간 사람을 구운 전어 냄새로 내려오게 만드는 장면이 있었다. 음식으로 사람을 살리다니, 대단하다.
“마침 가을이라 전어를 들고 갔다. 예부터 가을 전어라고 하지 않던가. 제철에 나는 음식을 제때 먹는 것이 맛도, 영양도 최고다. 모든 먹을거리는 제일 맛있을 때가 따로 있다. 사람으로 치면 가장 사람다운 때, 완벽하게 자아실현이 된 시기다. (목소리가 높아지며) 인간에겐 모든 먹을거리가 자신의 존재가 가장 빛날 때 세상에 나오도록 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
○“재료찾아 ‘출장’도 가요”
만화 식객에는 허영만 화백의 음식관이 담겨 있다. 서울 수서에 있는 화실에서 애견 처칠이 허 화백에게 재롱을 부리고 있다. 이종승기자
―전적으로 공감한다. 매생이국을 먹기 위해 겨울을 기다린다는 장면에서 고개를 끄덕거린 기억이 있다.
“매생이국?”
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충청도가 고향인 기자가 매생이국을 입에 올리는 것을 보고 놀란 듯했다. 매생이는 파래 비슷한 해초다. 전남 일부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었지만 최근 서울에도 매생이국을 하는 음식점이 꽤 늘었다. 해장하는 데 매생이국 만한 게 없다. --;;;
식객은 단순히 음식이나 요리 방법을 다룬 만화가 아니다. 음식이나 요리는 조연에 가깝다. 자식을 감옥에 보낸 할머니 얘기를 다룬 고추장굴비 편, 사형수가 어머니를 추억하는 고구마 편, 다리가 불편한 어머니와 육상선수 아들 이야기를 다룬 반딧불이 편 등을 읽다 보면 눈물을 쏟지 않고 견디기 어렵다. 식객에서 음식은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엄청난 미식가인 것으로 알고 있다.(성찬은 말 그대로 ‘절대미각’을 지녔다. 참게매운탕을 한 숟갈 뜨고는 음식점 이름을 맞히기도 하고 음식에 들어간 고추가 덜 매우면서 은은한 맛을 내는 것을 보고 ‘태좌를 긁어낸 조선고추’임을 밝혀내기도 한다. 태좌는 고추씨를 고정시키는 노란 부분)
“미식가라고 하기엔 좀 거창하고 그저 맛에 민감한 편이다. 음식은 일단 맛이 있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건 만화가 재미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맛이 있다는 게 뭔가.
“원재료 맛을 충분히 살린다는 의미다.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음식이 입에 안 맞아서 혼났다. 고향에선 된장으로 나물을 무치는데 서울에선 고추장과 참기름을 쓴다. 향이 너무 강하면 재료 맛을 죽이는 경우가 많다.”
그는 좋은 음식은 재료가 반이라고 주장한다. 제대로 된 생태찌개를 끓이기 위해 낚시로 건져 올린 생태를 찾아 강원 거진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김진수 기자가 걱정이다. 요리를 잘 못하는 것 같던데…. 하긴 요리 솜씨가 있어도 성찬씨 앞에선 주눅이 들어서 실력 발휘를 못 할 것 같다.
“음식은 정성만 있으면 된다.”
―아까는 음식은 무조건 맛이 있어야 한다더니….
“내가 그랬나? (웃음) 정성이 들어가 있으면 맛이 없더라도 만든 사람의 성의를 생각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해주는 음식보다 더 맛있는 게 있을까. 진수씨가 해주는 건 뭐든 세상에서 제일 맛있게 먹을 생각이다.”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