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가 세계 기록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상을 제정하면서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의 이름을 따 ‘직지상(Jikji Memory of the World Prize)’으로 정했다. 유네스코는 또 1990년부터 문맹퇴치에 기여한 인물이나 단체에게 주는 ‘세종대왕상(King Sejong Prize)’을 제정, 시상해 오고 있다. 세계가 한국문자와 기록문화의 우수성을 인정한 쾌거지만 정작 당사자인 우리는 그 깊은 의미를 잘 모르는 듯싶다.
▷한국과 독일은 오래전부터 금속활자 종주국의 위치를 놓고 논전을 벌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는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1452년에 간행한 ‘42행(行) 성서(聖書)’를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인정했다. 한국은 고려 문신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이보다 200여년 앞선 1234년 국가의 전례를 기록한 ‘상정예문(詳定禮文)’이란 책을 주자(鑄字·금속활자)로 찍어냈다는 기록이 있다고 주장했으나 구체적 물증을 제시하지 못해 공인받지 못했다.
▷1972년 뜻하지 않은 원군이 외국에서 나타났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파리 유네스코본부에서 열린 ‘세계도서의 해’ 기념전시회에 출품한 ‘직지심체요절’이 고려 우왕 3년(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된 도서임을 밝혀낸 것이다. 이로써 실물을 찾아내지 못한 ‘상정예문’을 제외하더라도 ‘직지’가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5년가량 앞선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이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입증됐다.
▷‘직지’는 고려 말 고승 백운화상이 불가의 게(偈) 송(頌) 법어(法語)의 핵심을 상하 두 권으로 요약한 책. ‘직지’는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에서 나온 말로 ‘사람의 마음이 곧 부처’임을 뜻한다. 19세기 말 프랑스 대리공사로 서울에 온 콜랭 드 플랑시가 본국으로 가져간 뒤 골동품 수집가에게 넘겼고, 그 상속인이 1950년 이를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했다. 하권만 남아있고, 그나마 첫 장은 떨어져 나갔으나 마지막 장에 정확한 간기(刊記)가 남아 있어 세계적 공인을 받게 됐다. 그야말로 부처님의 가피(加被·보살핌)가 아닐 수 없다.
오명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