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벨트란을 넘어라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2004시즌이 어느덧 1/8을 지났다. 시즌 초반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만년 하위 팀들의 두드러진 약진. 어메리칸리그에서는 텍사스와 디트로이트가 줄곧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고, 내셔널리그에서는 중부 지구의 신시내티와 밀워키가 컵스와 휴스턴에 밀리지 않는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젊은 보안관들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시즌 초반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펼치고 있다. 마이클 영-행크 블레이락-알폰소 소리아노가 이끄는 공격력은 팀 타율 전체 1위를 달릴 정도로 절정에 오른 상태며 약점으로 지적됐던 선발 로테이션과 불펜진도 눈부신 호투를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팀 내 최고 연봉자이자 ‘화려한 부활’을 선언한 박찬호가 위력적인 피칭을 앞세워 제 몫을 해낸다면 텍사스의 가파른 상승세는 당분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4경기에 등판한 박찬호는 기복이 심한 롤러코스터 피칭을 보여주고 있다. 빅 리그의 선발 투수, 나아가 팀의 1, 2선발을 맡는 투수라면 나쁜 컨디션 속에서도 승리를 기록할 수 있는 안정감을 유지해야 한다. 통산 200회가 넘는 선발 등판 경험이 있는 만큼 관록과 노련함이 묻어나는 피칭이 필요하다.
팬들은 더 이상 롤러코스터를 타는 박찬호를 원하지 않는다.
시즌 2승의 문턱에서 만난 KC 로얄스와의 경기. 시즌 5번째 등판을 미리 살펴보도록 하자.
카를로스 벨트란을 넘어라
1. 토니 그라파니노(2B)
2. 카를로스 벨트란(CF)
3. 조 란다(3B)
4. 후안 곤잘레스(DH)
5. 맷 스태어스(RF)
6. 켄 하비(1B)
7. 켈리 스티넷(C)
8. 애런 가이엘(LF)
9. 안드레스 블랑코(SS)
어메리칸리그 중부 지구 최하위를 달리고 있다고 해서 KC의 타선을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 마운드의 난조로 인해 하위권으로 머물러 있을 뿐, 팀 타율은 전체 3위를 기록할 정도로 막강한 화력을 자랑한다.
KC의 공격의 핵심은 단연 카를로스 벨트란. KC의 간판 스타인 벨트란은 리그에서 가장 다재 다능한 플레이어 중 한 명이다. 빠른 뱃 스피드와 뛰어난 컨택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골드글러브에 근접한 수비 능력과 매 시즌 30개 이상의 도루를 기록할 수 있는 폭발적인 스피드까지 보유했다.
뿐만 아니다. 2001시즌부터는 매 시즌 100득점 100타점 30도루를 기록하고 있을 만큼 기복 없는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으며 3년 평균 26개의 홈런이 말해주듯 만만치 않은 파워까지 겸비했다.
트레이드 데드라인이 되면 수 많은 팀들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이유도 이처럼 다양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찬호로서는 장타를 조심함과 동시에 벨트란 앞에 주자를 놓아주지 않도록 앞 타자들과의 승부에 많은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벨트란과 함께 맷 스태어스와 켄 하비도 신경 써야 할 타자들이다. 마이크 스위니와 후안 곤잘레스가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닌 상황이기에 이동일인 것을 감안하면 맷 스태어스가 선발 출전할 가능성이 높다. 전성기는 지났지만, 여전히 뛰어난 파워를 선보이고 있는 좌타 거포 스태어스는 박찬호에게 많은 부담을 줄 것이다.
KC의 미래 켄 하비의 방망이도 만만치 않다. 주전 1루수인 마이크 스위니의 출전 시간을 빼앗을 정도로 수준급의 공격력을 자랑하는 하비는 .421의 고타율로 팀 내에서 가장 높은 타율을 기록 중이다.
KC는 현재 1루, 2루, 3루, 포수, 중견수의 포지션은 고정적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나머지 포지션은 주인공이 자주 바뀌고 있다. 바로 주전 유격수인 앙헬 베로아가 부상자 명단에 올라갔기 때문. 더구나 마이크 스위니와 후안 곤잘레스 역시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니다.
아마도 30일 경기에서 스위니와 곤잘레스의 모습을 모두 보기는 쉽지 않을 듯.
베로아, 산티아고, 곤잘레스, 스위니, 하비, 란다, 벨트란 등이 모두 출전하는 KC의 선발 라인업은 보스턴에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다. 그렇지만, 30일 경기에서는 KC의 정예 멤버가 모두 출전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박찬호로서는 최강의 라인업을 피했고, 게다가 선발 투수까지 쉬운 투수로 교체됐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등판 변경이 전화위복이라 할 수 있다. 낮 경기라는 부담이 따르지만, 첫 번째 경기나 세 번째 경기와 비슷한 투구 내용을 보여줄 수 있다면 어렵지 않게 승리를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
한솥밥을 먹었던 데니스 레이예스
박찬호와 선발 맞대결을 펼칠 투수는 멕시코 출신의 데니스 레이예스다. 당초 대럴 메이가 선발 등판할 예정이었으나 고질적인 사타구니 부상으로 몸 상태가 정상적이지 못해 레이예스로 긴급 교체됐다.
뛰어난 투수는 아니지만 레이예스는 국내 야구팬들에게 낯이 익은 인물. 1997, 1998시즌 다저스에서 박찬호와 한솥밥을 먹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레이예스는 다저스에서 ‘제 2의 페르난도 발렌수엘라’를 꿈꾸며 많은 공을 들였으나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채 제프 쇼 ? 폴 코너코+ 데니스 레이예스의 트레이드 때 신시내티로 이적했다. 레즈에서도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레이예스는 번번히 선발 로테이션 진입에 실패했고, 이후 콜로라도, 텍사스, 피츠버그, 애리조나, KC로 팀을 옮겨 다녀야 하는 저니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레이예스는 여전히 불펜 투수로는 매력적이다. 8번째 시즌을 맞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27살에 불과하며 좌타자들에게는 까다로운 타입의 투수다. 또한 롱 릴리프의 역할이 가능하기 때문에 선발 로테이션에 차질이 생길 경우 선발로도 투입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레이예스는 텍사스의 타자들이 공략하지 못할 만큼 위력적인 투수는 아니다. 오히려 1일부터 강호 보스턴과의 시리즈를 가져야 하는 텍사스로서는 타격감을 최대한 끌어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 아울러 시즌 2승째를 노리는 박찬호에게도 레이예스는 이번 시즌 맞대결을 펼칠 투수 중 가장 손쉬운 상대가 될 것이다.
레이예스는 컷 패스트블과 커브를 주무기로 구사하며 직구의 구속은 80마일 중,후반에 그친다.
주요 체크 포인트
구위 회복 여부
지난 애너하임전은 부상이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구위에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직구 구속은 물론, 슬러브와 체인지업 등 대부분의 구질이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만일 같은 투구 내용이 반복 되다면 부활에 대한 불신과 함께 부상에 대한 걱정 또한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다시 92~94마일의 패스트볼과 날카로운 슬러브가 구사된다면 지난 경기의 부진은 일시적인 현상으로 간주해도 좋을 것이다.
2004시즌 텍사스의 운명은 박찬호에게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텍사스가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박찬호의 활약은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팀이 승리를 갈망할 때 승리를 안겨줄 수 있는 투수, 필드에서 같이 땀을 흘리는 동료들에게 믿음을 안겨 줄 수 있는 투수, 자신을 성원하는 팬들에게 환호를 안겨줄 수 있는 투수, 투구 하나 하나에 혼을 실어 던질 수 있는 투수.
박찬호도 서서히 이런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박찬호의 시즌 2승 달성 여부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시즌 다섯 번째 등판은 30일 새벽 03:00부터 시작된다.
임동훈 동아닷컴 스포츠리포터 arod7@mlbpar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