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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메이팅 마인드’…이성유혹의 기술이 진화의 동력

입력 | 2004-04-30 17:26:00

‘메이팅 마인드’의 저자 밀러는 ‘살아남으려는 본능’ 못지않게 ‘이성으로부터 선택받고픈 본능’이 진화의 결정 요소 중 하나이며 이는 인간도 예외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황새 한 쌍이 짝짓기에 앞서 부리로 상대방을 자극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메이팅 마인드/제프리 밀러 지음 김명주 옮김/728쪽 3만2000원 소소

“30세 이전에 과학에 위대한 공헌을 하지 못한 사람은 영원히 하지 못할 것이다.”

언젠가 아인슈타인이 툭 던진 이 말에 실제로 얼마나 많은 과학자들이 좌절감을 느꼈을지는 알 길이 없다. 작년에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한 일본인 연구자에 의해 발표됐다. 그는 280명의 위대한 남성 과학자들의 일생을 분석한 후 그중 65%가 35세 이전에 자신의 최고 논문들을 집필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결혼을 하고 나면 나이에 상관없이 학문적 성과가 급격히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대신 미혼 과학자들은 나이가 들어도 계속해서 좋은 연구 결과들을 내놓았다. 그는 이를 두고 남성 과학자의 창조성이 짝짓기와 관련 있다고 결론지었다. 즉 여성에게 선택받기 위해 남성 과학자들이 기를 쓰고 경쟁을 한 결과 양질의 논문들이 탄생했다는 설명이다. 기혼 과학자들에게는 참으로 슬픈 소식이다. 짝짓기가 창조성의 원천이라니!

‘메이팅 마인드’의 저자는 짝짓기와 인간 본성의 관계를 본격적으로 탐구한 진화심리학계의 차세대 리더다. 그는 이 책에서 ‘인간 본성의 진화를 제대로 설명하려면 다윈의 자연선택론보다 성선택론이 우선시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려면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결국 짝짓기에 성공해야 비로소 진화적 과업을 달성할 수 있다. 유성생식을 하는 동물들에게 짝짓기는 생존만큼이나 중요하다.

저자는 성선택론이 이런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인간 본성의 진화를 논의하는 맥락에서만큼은 그동안 늘 찬밥신세였다는 사실을 고발한다. 동물행동학 분야에서 지난 수십년 동안 가장 활발히 논의된 이론이 다름 아닌 성선택론이었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잘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이다. 인간에 관한 한 성선택론은 실제로 기껏해야 짝짓기 행동 양상을 설명할 때만 주로 사용돼 왔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만이 갖고 있다고 여겨지는 독특한 특성들, 가령 음악, 미술, 문학, 자의식, 언어, 유머, 창의적 사상, 종교, 도덕 능력 등의 진화를 성선택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해석함으로써 이런 상황을 정면으로 돌파한다. 즉 이 모든 인간의 독특한 능력들이 이성 짝을 유혹하기 위한 전략으로서 최근 250만년에 걸쳐 진화했다는 주장이다. 성선택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이게 만든 진정한 추동력이었던 셈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 사냥과 채집을 통해 살아남기 위해 시각을 발달시켰다는 식의 자연선택이론은 생존에 별 도움이 돼 보이지 않는 유머나 예술 감각들의 특성을 설명하는 데 무력하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의 독특한 본성은 암컷에게 선택을 받기 위해 진화된 수컷 공작의 화려한 꼬리와도 같다. 이 꼬리는 생존의 이득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 맥락에서 그동안 “도대체 음악과 문학이 생존에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반문하며 다윈의 손아귀에서 인간을 구출하려 했던 많은 분들께 이 책은 어쩌면 나쁜 소식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다윈의 왼팔인 성선택론에 다시 붙들릴 판이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옛날 연애편지들을 들춰본 적이 있는가? 닭살이 돋다가도 ‘연애를 하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는 말에 어느새 고개가 끄덕여진다. 성선택과 인간 본성의 끈끈한 관계를 본격적으로 탐구한 이 책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대낮에 펼쳐진 인간 본성의 진화를 다룬 책이라면 이 ‘메이팅 마인드’는 한편의 ‘달빛 소나타’다.

장 대 익 한국과학기술원(KAIST) 강사·과학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