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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인문사회]공동체 밖 개인의 자유란 없다

입력 | 2004-04-30 17:26:00


◇‘부자유’론:‘뭐든지 자기결정’의 한계(‘不自由’論:‘何でも自己決定’の限界)/나카마사 마사키(仲正昌樹) 지음/치쿠마쇼보(築摩書房), 2003년

요즘 일본 언론은 세 명의 일본인, 즉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한 명과 NGO 활동을 하던 두 사람이 이라크 무장 집단에 유괴됐다가 풀려난 과정에 대한 보도로 연일 지면과 화면을 채우고 있다. 일본 자위대의 철수를 요구했던 이 무장 집단은 다행히도 이라크 이슬람 종교자회의의 충고와 설득으로 인질들을 석방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부분 일본 매스컴의 보도 태도는 이 세 사람의 석방을 즐거워하기보다는 피해자들의 ‘자기 멋대로’인 행동과 가족들의 ‘불합리한’ 태도를 신랄하게 비난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세 사람이 유괴된 직후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 도지사는 자위대는 절대로 철수해서는 안 되며, 이 세 사람은 위험한 이라크에 자기 멋대로 갔기 때문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단언했다. 또 피해자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이 인질을 구하기 위해 자위대 철수를 희망했을 때, 개인의 ‘사적’ 감정을 근거로 국가의 ‘공적’ 임무를 소홀히 한다고 비난하는 정치가들도 적지 않았다. 이런 비난의 소리는 인질이 석방되자마자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비난의 핵심은 인질로 잡힌 사람들의 행동은 ‘자기책임’ 논리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기책임’ ‘자기결정’이라는 개념은 원래 국가권력의 사회 개입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하는 리버럴리즘의 주장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역으로 국가가 국민에게 ‘자기책임’ ‘자기결정’을 요구한 것이다. 이것은 국가가 리버럴리즘을 지지해서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이런 주장이 이라크 인질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최근 노령화, 병, 사고 등으로 개인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국가가 도움을 줄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것도 같은 논리의 확산이다.

이런 논리에 대해 이 책 ‘부자유론’의 저자인 나카마사 마사키는 어떤 문맥이나 상황에도 의존하지 않는 ‘자유로운 주체’를 상정하는 것 자체가 오류라고 지적한다. 자기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파악하지 못했는데 모든 것을 ‘당신이 결정하시오’라고 했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또 이런 상황이 사람들을 공동체 논리에 순종하도록 몰아붙인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결정’을 한다면서도 암묵의 공동체 논리에 따르는 형태로 행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저자는 개개인의 주체가 어떤 상황이나 관계 속에서 규정되고 있는지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자기가 얼마나 ‘부자유’한가를 인식하는 것 이외에는 ‘자유’로 가는 길은 없다고 역설한다.

공동체 논리는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부드럽고 따뜻하지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잔혹하기 그지없다. 이라크 인질 사건에서 보인 일본 언론의 논조에는 이 공동체 논리가 그야말로 ‘훌륭하게’ 발휘됐다. 이라크에서 NGO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나 전쟁의 비참함을 전하려고 하는 저널리스트는 자위대 파견을 지상명제로 삼는 사람들 쪽에서 보면 보호할 필요가 전혀 없는 ‘바깥’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연숙 히토쓰바시대 교수·언어학 ys.lee@srv.cc.hit-u.ac.j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