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가이자 작가인 프랑수아 플라스는 ‘오르배 섬 사람들이 만든 지도책’에서 세계 각국 민화에 깃든 상상력을 시각적으로 살려냈다. 그림은 ‘쌍둥이 호수가 있는 바일라바이칼’의 이야기 중 늙은 마법사가 성경을 가져온 이방인과 만나는 장면. 사진제공 솔
◇아마조네스의 나라에서 북소리 사막까지/프랑수아 플라스 글·그림 공나리 옮김/78쪽 1만1000원 솔
오르배 섬의 지리학자들은 지도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이치를 알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평생 자신의 뜰에 사는 개미의 세계를 지도로 만들었고, 또 어떤 학자는 세상 곳곳을 떠돌면서 신화 전설 민담 등을 채집해 지도에 담아 표현하려 했다.
이제 오르배 섬은 지상에서 사라졌고, 그 나라의 지도책 몇 권이 세상에 전할 뿐이다. 알파벳 26자의 한자씩을 따서 각 나라를 소개하는 이 지도책은 오르배 사람들이 보았던 세상 끝에서 끝까지의 진기한 기록이다.
첫 번째 A의 나라는 아마조네스. 이 나라의 탐험자는 슬픈 얼굴의 류트악사 유포노스였다. 유포노스가 퉁기는 선율은 단 몇 개의 음만으로도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았지만 유포노스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가 바라는 건 돈도 명예도 아니고 오로지 노래하는 것뿐. 그러나 유포노스는 벙어리였다. 시름에 젖어 정처 없이 여행을 떠난 유포노스는 한때 지상 낙원이었던 아마조네스로 가는 관문에 도착한다. 자신들을 시기하는 사가낙스 족과의 전투에 져 단 일곱 사람을 제외하고는 몰살당한 여전사들의 나라.
전투의 피로 더럽혀진 대지는 꽁꽁 얼어붙었다.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 같을 때 한 여전사가 아름다웠던 시절의 아마조네스의 돌과 덤불숲, 늪과 나무의 이름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노래를 또 다른 사람이 받고….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다. 여전사들의 노래가 시들어 버린 하늘과 숲, 땅을 일깨운 것이다.
유포노스는 아마조네스 왕국 입구의 혼잡한 마을 시장에서 이 전사들을 만났다. 목이 메어 아마조네스 옆으로 다가갔지만 그들처럼 노래는커녕 단 한마디도 할 수 없는 유포노스. 울 것 같던 그가 류트를 꺼내 퉁기자 여전사들은 마치 포도나무가 나뭇가지를 휘감듯 유포노스의 선율을 감쌌다. 대장장이도 상인도 마부도 시장의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인 채 연주를 들었고, 유포노스는 더 이상 벙어리인 것이 불행하지 않았다.
이쯤에서 묻자. 사라진 오르배 섬은 어디에 있는가. 오르배는 이 책을 쓰고 그린 프랑수아 플라스의 마음속에 있는 ‘상상의 영토’이자 ‘거짓말의 왕국’이다. 그러나 그 거짓말이 꿰맨 자국 하나 보이지 않을 만큼 감쪽같은 이유는 저자가 남미 오세아니아 유럽 아프리카 등 세계 각국의 신화와 민담에 ‘거짓말’의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각각의 신비한 이야기들은 조화로운 삶, 우정, 신의, 깨달음 같은 보편적 인간가치의 문제에 와 닿는다.
책의 첫 번째 미덕은 문장이 아름답다는 것. 플라스의 문장은 번역문조차 음악적이다. 두 번째는 상상력을 시각적으로 확장하게 해주는 것. 저자는 전투용 코뿔소, 거인 구렁이, 웃는 두꺼비 같은 상상의 사물들을 진짜 박물지에 수록된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그려낸다.
저자는 이 책으로 볼로냐 도서전 라가치상(1998) 등 국제도서전 청소년 부문상들을 다수 수상했다. ‘에스메랄다 산에서 인디고 섬까지’ ‘비취 나라에서 망드라고르 산맥까지’ 등 시리즈의 2, 3권도 함께 출간됐다. 6권으로 완간 예정.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