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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포로 유골 송환]“고향 묻어 달라” 유언 7년만에 결실

입력 | 2004-04-30 18:57:00

1951년 납북됐다가 숨진 국군포로 백종규씨의 유골이 30일 인천공항을 통해 국내로 송환됐다. 국군포로의 유해가 국내에 들어온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원대연기자


30일 국내로 송환된 국군포로 백종규씨의 유골 건은 올 2월 초 시민단체인 납북자가족모임을 통해 처음 알려졌다.

이날 아버지의 유골을 들고 입국한 딸 영숙씨(48·탈북자)는 올 초 백씨의 유골을 촬영한 20분짜리 비디오테이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앞으로 보내는 호소문, 아버지 백씨의 증명사진 등을 납북자가족모임에 보내왔다.

백씨의 자녀(5남매) 중 맏딸인 영숙씨는 아버지가 탄광 노동에 시달리다 1997년 영양실조로 숨질 때 “고향 경북 청도에 뼈를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자 이를 지키기 위해 세 차례나 탈북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01년 남편, 아들, 딸과 함께 탈북했으나 마음이 바뀐 남편이 북한으로 돌아가자며, 중국 공안(경찰)에 신고하는 바람에 북송됐다. 그는 2002년 4월 남편을 제외한 아들, 딸과 함께 함북 온성군 상하리에 매장돼 있던 아버지의 유골을 갖고 다시 탈북했다. 그는 아버지의 유골을 중국 모처에 묻어 둔 뒤 다시 공안에 체포돼 북송됐다. 영숙씨는 지난해 4월 세 번째로 탈북했으나 그 과정에서 딸을 잃어버렸다.

영숙씨는 “아버지의 고향이 청도군 금천면 소천리이고, 남한에 15∼17세 아래 동생이 있다는 것, 그리고 군 입대 전 정미소에서 일을 했으며, 할아버지가 사업차 일본을 자주 왕래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인천에 살고 있는 백씨의 동생 청장씨(61)는 정부 당국에 “맏형님이 고향 청도군에서 정미소 일을 하다 6·25전쟁 때 군에 입대한 뒤 행방불명됐다는 이야기를 부친으로부터 들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군포로 출신으로 1998년 귀국한 장모씨(78)는 “백씨와 함북 온성군 상하 청년탄광에서 일했으며 딸 영숙씨도 잘 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전사자 명단 및 대전국립묘지 현충원 위패에서 ‘일병 백종규’라는 이름을 확인했으나 유전자검사 등을 통해 영숙씨가 들고 온 유골이 정말 백씨의 것인지를 우선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씨의 유골은 도착 즉시 유전자검사를 위해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졌다. 유전자검사에는 한 달가량 걸릴 전망이다.

정부는 국군포로의 딸이지만 단순 탈북자인 영숙씨를 어떻게 대우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