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희씨가 운영하는 ‘그림책버스’ 앞에서 어린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갖고 있다. 사진제공 이상희씨
아이들은 5월을 손꼽아 기다린다.
‘5월 5일 어린이날은 선물의 날이야! 어른은 아이한테 선물을 해주게 되어 있어!’
그렇게 생각하는 게 틀림없다. 어른이라고 크게 다르지도 않다.
‘여느 때 아이하고 못 놀아주고 못 사줬으니, 이럴 때 한번 크게 쓰자!’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크게 한번 쓰고 나서도, 큰 선물 받고 나서도, 양쪽 다 만족감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러니 이번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어떤 것이 효용가치가 높으면서 주고받는 이 모두에게 지속적인 만족감을 주는 선물인지.
이를테면 이런 선물은 어떨까? 쓰고 쓰고 또 써도 바닥나지 않는 물건… 아이 자기뿐만 아니라 어른도 누릴 수 있는 물건… 아이 친구들이 놀러 와서 나누어 써도 닳지 않는 물건… 시간이 흘러도 지루하지 않고 새록새록 새로운 깨달음과 기쁨을 주는 물건… 한 장면을 펼쳐서 거실 장식장에 기대어 놓으면 명화 액자 못지않게 가족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물건….
그 물건은 ‘그림책’이고, 그림책 중에서도 특히 ‘질 좋은 그림책’이다. 어째서 그렇다는 건지는 아이 손잡고 서점에 가서 그림책을 펼쳐보면 알 수 있다.
이를테면 갈기도 근사한 숫사자 하나가 숲 속에서 양끝이 땅속 깊이 박힌 빨간 끈을 갖고 싶어 쩔쩔매다가 조그만 거미의 지혜로 빨간 끈 사이에 앉은 채 머리에 올려 묶고 흐뭇해한다는 ‘빨간 끈으로 머리를 묶은 사자’(돌베개어린이)에서는 아이는 아이대로 ‘용맹한 사자의 통념을 뒤엎는 유쾌함’을 누리고 어른은 어른대로 ‘갖고 싶은 것을 소유하지 않고도 갖는 방법’에 대한 깨달음을 누리게 된다.
‘내가 만약…’(비룡소)에서는 아이는 아직 살아보지 못한 온갖 시공간을 상상해보는 즐거움을 누리고 어른은 살면서 겪은 온갖 경험을 유머러스하게 돌이켜보는 시간을 갖게 해준다. ‘열까지 셀 줄 아는 아기염소’(한림)에서는 아이는 아기염소의 좌충우돌을 즐기고 어른은 턱없는 오해가 불러일으키는 흥미진진한 사건을 즐기게 되며, 주인공 아이가 오랜 조바심과 기다림 끝에 숲 속 동물들과 친구가 된다는 ‘나랑 같이 놀자’(시공주니어)에서는 아이 어른 각자 자기 체험 넓이만큼씩 결말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아기곰 삼형제’(웅진닷컴)에서는 커다란 그림 속의 아기 동물들이 겪는 봄날 이야기를, ‘피터 래빗 시리즈’(한국프뢰벨)에서는 앙증맞은 동물 그림이 엮어내는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이 다음에 커서 나는’(베틀북)에서는 아이랑 부모가 함께 아이의 미래를 나란히 꿈꾸어보게 된다.
아, 그밖에도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멋진 그림책은 너무 많다. 자기 한계를 뛰어넘는 용감한 메뚜기 이야기(뛰어라 메뚜기·보림), 한낱 먹잇감을 친구로 맞아들인 고양이 이야기(빨간 고양이 마투·문학동네어린이), 차표들이 걷고 기다리며 지하철을 타고 달리는 도시 이야기(지하철은 달려온다·초방책방)….
이런 멋진 그림책을 내 아이하고만 읽는 것이 아까워서 내가 사는 강원 원주 어머니들과 함께 만든 것이 그림책전문 꼬마 도서관 ‘패랭이꽃그림책버스’다.
이상희(시인·그림책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