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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효자동 이발사’… 권력, 빡빡 밀어버리면 안될까

입력 | 2004-05-02 17:30:00

아들을 지키려는 평범한 아버지의 부정, 절대 권력에 대한 풍자, 순리가 통하는 세상에 대한 열망을 담아낸 ‘효자동 이발사.’ 사진제공 청어람


5일 개봉하는 ‘효자동 이발사’(임찬상 감독)는 한참 웃다 보면 어느새 가슴 한 구석이 뭉클해지는 묘한 영화다. 코미디로 치장된 겉포장을 벗기면 아들을 지키려는 평범한 아버지의 눈물, 절대 권력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 ‘말이 되는’ 세상에 대한 강한 열망이 고스란히 묻어나온다. 영화는 그 모진 세상을 살아야 했던 우리네 아버지들의 자화상이자 이들을 위로하는 뒤늦은 찬가이기도 하다.

○ 대통령 이발사?

청와대가 경무대로 불리던 시절, 부근에서 이발소를 하는 성한모(송강호). 소심하고 순박한 그는 이승만 대통령을 도와야 한다는 동네 어른의 말에 죄책감 없이 부정선거를 돕는다. 5·16 군사 쿠데타 뒤 경호실장 혁수(손병호)의 눈에 띠어 대통령 이발사가 된 그는 68년 1·21사태, 72년 10월 유신, 79년 10·26과 12·12 사태로 이어지는 파란만장한 현대사를 지켜본다. 하지만 한모는 간첩들이 걸린다는 설사병, ‘마루구스’병에 걸린 아들 낙안(이재응)조차 구할 힘이 없다. 또 훗날 대학생이 된 낙안이 고문 후유증으로 걷지 못하게 되자 한모는 깊은 자책감에 빠진다.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보이지만 한모를 대통령의 이발사로 설정한 것은 빛나는 아이디어다. 한 인간의 삶 속에서 시대를 꼬집어보겠다는 임 감독의 ‘야무진’ 욕심의 산물이다. 최고 권력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쥐꼬리’ 만한 권력도 없는 그 자리야말로 매우 효과적인 선택이었다.

○ 뱃속의 애가 다섯 달이 넘으면 애를 낳아야 한다

웃음 사이로 풍자의 칼날을 슬쩍 들이대는 점이 이 작품의 매력적인 화법이다. 1954년 자유당 정권의 ‘사사오입’(四捨五入) 개헌은 극중에서 한모의 아이를 임신했으나 낳기를 거부하는 민자(문소리)를 향한 감언이설로 둔갑한다. 다섯달이 넘으면 애를 낳아야 한다는 것. 각하의 가르마 비율은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으로 2대 8이다. 1·21사태 때 간첩들이 집단적으로 걸린 ‘마루구스’병은 다름 아닌 마르크스병이다.

○ 한모의 배설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한모의 배설 장면이다. ‘용안’(龍眼)을 먹이면 아들의 다리가 낫는다는 점괘에 따라 국장(國葬)을 앞둔 대통령 초상화의 눈을 긁어 인주통에 담은 한모는 경호원이 다가오자 엉겁결에 통을 삼켜버린다.

국장 차량이 한모의 이발소 앞에서 헛바퀴를 도는 가운데 한모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 통을 배설한다. 그를 괴롭히던 권력의 찌꺼기를 몸 밖으로 쏟아내는 일종의 의식인 셈이다.

영화는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권력의 희생양이 됐던 한모가 인간적 아픔을 겪으며 성숙했음을 보여준다. 빛나는 대머리의 ‘새 각하’ 앞에서 그가 던지는 뼈있는 한마디. “각하, 머리가 다 자라면 다시 오겠습니다.” 한모의 체취와 웃음이 물씬 풍기는 명대사다.

송강호가 만들어내는 웃음의 강도는 여전하지만 그 여운은 훨씬 길어졌다. 15세 이상 관람 가.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