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학 동창이 들려준 군대 이야기.
이른바 ‘386’인 그는 입대한 뒤 고참으로부터 구타 등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 결심했다. ‘내가 병장이 되면 졸병들을 때리지 않고 인간적으로 잘 대해 주리라.’
그러나 정작 고참이 되어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내무반을 만들려고 하니 돌아오는 것은 자발적인 예우와 규율이 아니었다. 방만하고 무질서한 상황이 종종 생겼고 졸병들이 고참에게 기어오르기도 했다. 그는 다시 ‘줄빠따’로 돌아갔다고 한다.
이런 일화가 군대만의 일은 아니다.
예전엔 직장에서도 마음씨 좋은 상사는 ‘물’로 여겨졌다. 좀 악독하더라도 부하들을 닦달하는 사람이 좋은 실적을 내는 유능한 상사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사이에 분위기가 달라졌다. 과거엔 한국 유수의 대기업들에서도 군대식 기합과 고함이 횡행했다. 요즘은 기합은커녕 경영자가 직원들의 생일에 꽃과 케이크를 선물하고 직접 e메일을 보내 관심을 표현하는 일이 많아졌다.
인재가 기업의 가장 중요한 자원으로 떠오르다 보니 돈만으로는 살 수 없는 의욕과 충성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다양한 ‘감성적 방법’들이 동원되고 있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 지도자들은 명령 대신 토론을 하고 심지어 대중 앞에서 눈물까지 보인다.
이처럼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 과거의 권위주의적인 리더십은 해체되고 있는 듯하다. 최근 ‘리더십 위기’가 자주 거론되는 이유 중의 하나도 리더십이 전환기를 맞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보스’ 스타일로 대변되는 과거의 리더십이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다면 민주적이고 다양화된 사회에 맞는 새로운 리더십의 출현이 절실하다.
경영학계에서는 하나의 대안으로 ‘서번트 리더십’이란 말이 유행한다. 말 그대로 머슴 같은 자세로 고객과 구성원들에게 봉사하는 리더십이다. 미국 AT&T의 임원이었던 로버트 그린리프가 창안했다는 이 개념에서는 리더가 통제하고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도와주고 후원하는 사람이다.
위대한 기업을 만든 경영자들은 카리스마가 강한 사람이 아니라 뒤에서 조용히 직원들을 조직하고 격려한 사람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어느 상황에나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눈여겨볼 만한 대목은 있다.
특히 서번트 리더십이 제1조로 내세우는 ‘경청(傾聽)’이 그렇다. 상대방의 말을 주의 깊게 듣는 것만으로도 갈등이 풀리고 아이디어와 의욕이 생기는 것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지도자의 덕목은 동서양이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이 삼남인 이건희 회장을 후계자로 지명하면서 써준 휘호도 ‘경청’이었다던가.
신연수 경제부 차장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