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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산신령 되어 돌아온 ‘황제’ 유희성씨

입력 | 2004-05-03 17:40:00


《지난해 9월 서울예술단의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이 공연된 중국 베이징의 세기극원. 공연이 끝난 뒤 한 중국여성이 연출자인 유희성씨(서울예술단 연기감독)를 찾아왔다. 그는 “이 작품을 보니 당신의 운명이 느껴진다. 당신이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게 참 다행”이라고 말했다.》

중국인들에게도 그가 연출한 운명적 사랑의 비극이 그만큼 절실하게 다가왔다는 뜻이다. 나이 밝히기를 꺼려하는 유씨는 아직 미혼이다.

2002년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한국뮤지컬대상 연출상을 수상했지만 그의 본업은 뮤지컬 배우. 그가 다시 무대에 선다. 8∼16일 서울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되는 ‘여름밤의 꿈’(연출 홍원기).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부루마루’ 역을 맡았다.

‘여름밤의 꿈’은 ‘태풍’ ‘로미오와 줄리엣’ ‘크리스마스 캐롤’에 이은 서울예술단의 네 번째 세계 명작시리즈. 셰익스피어의 원작 ‘한여름 밤의 꿈’의 구성을 그대로 살리면서 작품 배경을 상고시대와 정령(精靈)들의 세계로, 극중극을 ‘견우와 직녀’로 대체해 한국 고대 판타지 분위기로 재창조했다.

남신령 ‘부루마루’역

등장인물들의 이름도 ‘부루마루’(한밝산의 남신령), ‘버들마마’(한가람의 여신령), ‘깹짱’(도깨비), ‘다루’(백제의 2대왕), 나누(마한의 여군주)로 바꿨다.

“연출은 잠시 외도한 거죠. 현재 국내에는 중견 뮤지컬 배우들이 거의 없는 편인데, 흰 머리 날 때까지 무대에 서고 싶습니다.”

그는 2002년 ‘태풍’에서 프로스페로 역으로 출연한 이후 주로 연출자로 활약해왔다. 올 10월에는 황순원 원작의 창작뮤지컬 ‘소나기’를 연출할 예정이다.

‘고종황제’역

배우로서는 97년부터 2002년까지 뮤지컬 ‘명성황후’에서 고종 역을 연기했다. 98년 ‘명성황후’ 뉴욕공연 당시 뉴욕타임스는 그의 목소리에 대해 “서양배우에서는 찾을 수 없는 애달픈 호소력과 깊은 울림을 가졌다”고 평했다.

섬세하면서도 강인함이 느껴지는 그의 목소리의 비밀은 판소리에 있다. 그는 88년부터 93년까지 명창 안숙선씨에게서 판소리를 배웠다.

유씨는 “뮤지컬을 위해선 성악, 판소리, 정가, 발레, 재즈, 한국무용, 탭댄스 등 배울 것이 너무도 많다”며 “요즘 젊은 친구들은 너무 빨리 스타가 되기 때문에 기초를 제대로 연습하지 않아 도태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국내 뮤지컬시장은 브로드웨이 뮤지컬들이 잠식한 상태”라며 “그러나 외국뮤지컬에서 배운 노하우를 바탕으로 국내 창작뮤지컬도 10년 이내에 한국영화처럼 폭발적인 성장을 거둘 것으로 본다”고 낙관했다. 매일 오후 3시 7시반. 02-523-0986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