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소니는 2003 회계연도(2003년 4월∼2004년 3월)에 989억엔(약 1조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는 자료를 내놓았다.
하지만 결산발표장에 나온 임원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흑자가 1년 전(1854억엔)의 절반으로 줄었기 때문.
소니를 포함해 일본 전자업계의 9개 대기업은 3년 만에 ‘전사(全社) 흑자’ 기록을 세웠다. 디지털 가전의 호조에 힘입어 8개사는 영업이익이 늘어났다. 이익이 감소한 곳은 일본 제조업의 ‘간판’인 소니뿐.
소니의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앞으로 디지털 제품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작년 말 야심작으로 선보인 ‘게임기 겸용 DVD레코더’가 얼마나 팔렸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답하기 곤란하다”며 입을 다물었다.
전문가들은 소니의 고전에 대해 ‘부업’에 신경 쓰느라 ‘본업’을 소홀히 한 탓이라고 분석한다. 영화 음반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에 투자를 집중하는 사이에 DVD레코더 디지털카메라 디지털TV의 신제품 개발에서 한 수 아래로 여겼던 경쟁업체에 뒤졌다는 것.
이번 결산에서도 전체 매출의 65%를 차지하는 전자 부문에서 353억엔의 영업손실을 낸 것을 금융과 영화의 수익으로 만회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소니가 디지털카메라에 주력한 캐논, 제품 구색이 다양한 마쓰시타, 액정에 강한 샤프처럼 자신만의 색깔을 갖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1년 전 도쿄 증시는 ‘소니 쇼크’로 크게 출렁거렸다. 소니가 2003년 1∼3월중 영업적자를 낸 사실이 발표되면서 닛케이평균주가는 1990년대 초 거품 붕괴 후 최저치로 곤두박질쳤다.
올해는 소니 주가만 하락했을 뿐 시장은 평온했다. 일본 경제의 체력이 강해진 게 이유지만 소니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냉정해졌음을 나타내는 증거이기도 하다.
소니의 부진이 계속되자 최고경영자(CEO)인 이데이 노부유키(出井伸之) 회장의 책임을 거론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 경제평론가는 이데이 회장이 각종 자문회의 명단에 이름을 자주 올리고 GM과 네슬레의 사외이사까지 맡은 것을 빗대 “그렇게 바쁜데 언제 소니 일에 매달릴 수 있는지 궁금하다”고 꼬집었다.
일본=박원재 특파원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