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하지심 관천하지사(以天下之心 觀天下之事). ‘백성의 마음으로 천하의 일을 보라’는 노자(老子)의 가르침을 좌우명으로 삼는 박세일(朴世逸·56) 서울대 교수가 총선 직전 한나라당에 뛰어든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조선시대 중엽의 대학자이자 문신(文臣)인 율곡 이이(栗谷 李珥)를 가장 존경한다는 그로서는 ‘실천적 지식인’의 현실정치 참여를 입당 명분으로 내세울 수 있을 것이다.
그는 10년 전 김영삼 정부에 출사(出仕)했다. 그리고 3년3개월 동안 대통령정책기획비서관, 사회복지수석비서관으로 일했다. 그는 이른바 ‘개혁파’였다. 세계화 프로젝트를 입안하고 사법개혁 교육개혁 노동개혁에 매달렸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그는 ‘미완(未完)의 개혁’이었다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정권이 국가부도사태로 끝을 맺었으니 그의 국정 참여 또한 헛수고에 그친 셈이다.
▼‘정치교수’와 다르려면▼
좌절한 그는 청와대에서 나온 뒤 서너 달가량 경북 영주 부석사 등 전국 각지의 사찰과 암자를 찾아다니며 마음을 달래야 했다. 머리 깎고 입산하는 것까지 생각하던 그는 율곡의 ‘수기치인(修己治人·자기 수양 후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을 떠올리고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 연구원으로 떠난다. 99년 가을에 귀국한 그는 한국개발연구원 교수를 거쳐 이듬해 모교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돌아왔다.
그런 그가 한나라당을 선택한 보다 구체적인 명분은 무엇인가. 지난 주말 필자와 만난 박 당선자(비례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작년 말에 한나라당 쪽에서 제의가 있었지만 거절했다. 스스로 정치에는 맞지 않는 체질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탄핵사태 직후 4·15총선에서 한나라당이 50석 정도밖에 안될 거라는 일부 신문 보도를 보고 고민하게 됐다. 특별히 한나라당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여당이 압도적 다수당이 되는 것이 과연 민주주의에 좋은 일인가. 그보다는 여야가 어느 정도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국가발전에 낫지 않겠는가. 그러다가 박근혜 대표체제가 들어서는 걸 보고 한나라당을 돕기로 결심했다.”
열린우리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 한나라당을 돕게 됐다는 말대로라면 그는 일단 명분을 살린 셈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실천적 지식인’의 참여 명분을 충족시킬 수는 없다. 더구나 그는 한나라당에 입당하기 직전까지 시민단체의 중요 직책을 맡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시민단체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 것이다. 그가 선거 때면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정치교수’와 다르다면 구체적 실천행위가 결과로 이어져야 한다.
그는 정당은 이익집단이 아닌 가치지향집단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가치를 추구하느냐의 이념적 정체성은 그래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체성이 뚜렷해야 청사진을 내놓고 국민에게 선택권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나라당의 정체성은 ‘21세기 신(新)보수’여야 하고 ‘실용적 개혁주의’는 그것을 이뤄나가는 방법론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문제는 그의 생각이 당내에 착근(着根)해서 한나라당을 수권능력 있는 보수정당으로 바꿔낼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이번 총선 과정을 통해 기존의 ‘영남 보수파’와 이회창 전 총재를 둘러싸고 있던 ‘왕당파’는 사실상 해체되거나 몰락했다. 새 집을 지을 수 있는 여건은 마련된 셈이다.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그러나 5공 시절의 민정당에서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으로 이어져온 당의 이미지는 여전히 ‘수구 영남당’이다. 박 대표가 그동안 실존적 고뇌를 통해 ‘박정희 딸’의 한계를 극복했다고 하더라도 ‘박근혜 바람’은 역설적으로 영남당의 한계를 부각시킬 수 있다. 그래서는 수권과는 거리가 먼 ‘불임(不妊) 정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렇다면 보수는 보수(補修)하되 진보의 가치도 수렴할 줄 아는 ‘열린 보수’로서 국민 중심세력의 신뢰를 넓혀가는 길밖에 없다. ‘박세일의 참여’가 성공할 수 있을지, 아니면 두 번째의 실패로 끝날지는 여기에 달려 있다. 한나라당에는 ‘하늘이 준 기회’일 수 있다. 기회는 자주 오는 게 아니다.
전진우 논설위원장 young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