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원화되면서 구성원 모두가 만족하고 지킬 수 있는 법치(法治)의 실현이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 법치는 사회구성원들의 법에 대한 인정과 복종으로부터 출발한다. 이번 회 신아크로폴리스에서는 서울대 김도균 교수(법학)가 김영일(18·서울대 법학과 1년) 김준엽(19·연세대 의예과 1년) 최승진군(19·고려대 전기공학부 1년)과 서민지양(19·서울대 법학과 1년)을 만나 악법도 지켜야 하는가, 시민불복종의 기준은 무엇인가 등 법치실현의 딜레마가 될 수 있는 문제들을 함께 짚어봤다.》
● 왜 법이 필요한가
▽김도균 교수=무정부주의자들은 법이 필요 없다고 주장하죠. 법이 자율성과 개인의 자주성을 제한한다는 주장도 있고요. 법 일반에 대한 복종의무는 왜 생기는 걸까요.
▽서민지=개인의 안전에 대한 보장과 국민의 지위를 누릴 수 있는 혜택에 대한 보답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자연 상태에서 사회생활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일정 수준의 법칙이 있어야 하고 또 이에 대한 동의와 약속이 있었다고 전제할 수 있으니까요.
▽최승진=자율성과 자주성이 법의 준수와 배치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법 테두리 안에서 자율적으로 반박하거나 개선을 유도하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죠.
▽김준엽=자유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그 책임이 바로 법이지요. 또 자유라는 것은 무한대가 아니라 개개인의 자유를 조금씩 제한해서 구성원 각자의 자유가 최대한 동등하게 보존되는 상태라고 생각해요. 이에 대한 규칙이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악법에도 복종할 도덕적 의무 있는가
▽김영일=사회구성원들의 동의를 충분히 수렴했다면 세부적인 항목이 악법일지라도 지켜야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준엽=민주주의 질서의 실현을 위해서라면 악법이라도 지켜야 하고 그 개정도 준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러나 인간을 위한다는 본래 목적을 거스르는 법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면 그 지배체제 자체에 대해 반항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봅니다.
▽김 교수=그렇다면 독일 나치시대의 법률이나, 미국 노예제도에 관한 법률에 대해서도 법의 처벌이 두려워 지킬 뿐만 아니라 도덕적 의무까지 져야 한다는 뜻인가요.
▽김영일=정당한 절차라는 것이 다수결의 횡포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내용과 절차 모두 보편적인 관념에 맞아야 하죠. 또 도덕, 정의, 신의 등과 법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법체계 내에서 개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최승진=법에 대한 복종 의무를 각 개인의 가치관으로 판단한다면 공동체의 안정이라는 법의 원래 목적이 훼손될 수 있어요. 그런 점에서 악법이라 할지라도 지켜져야 한다고 봅니다.
정의의 종이 걸려 있는 서울대 법과대 앞에서 김도균 교수가 학생들과 함께 법치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김 교수는 “다원화돼 가는 현대사회에서 시민불복종은 필연적인 현상이지만 그럴수록 불복종의 기준이 보편타당한가에 대한 판단은 엄격해야 한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김준엽, 김영일군, 김도균 교수, 서민지양, 최승진군. -원대연기자
▽서민지=사회 전체를 규율하는 악법과 특정 개인에게 손해가 되는 법은 다릅니다. 신념에 입각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법에는 저항하는 것이 오히려 정당하다고 생각해요. 공동체를 위한다는 측면에서도 그것이 법정신에 맞을 테니까요.
▽김 교수=그러니까 악법은 비합리적인 법이 아니라 인륜에 반하는 법이고 그런 법을 지킬 도덕적 의무는 없다는 것이군요.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직접 한 적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민주주의 체계가 막 형성되고 번영해가고 있는 아테네의 안정과 미래를 위해 도망가지 않고 독배를 받았을 뿐입니다.
● 시민불복종의 기준 보편타당성 갖춰야
▽김영일=시민불복종은 엄격하게 정의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정 법이 보편적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했을 때, 처벌을 감수하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보여주어 그 부당성을 공개해야 하지요. 그러나 그 방법은 비폭력적인 것이 돼야겠죠.
▽서민지=특히 불복종의 기준이 개인의 가치관에 따른 판단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가치관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집단이기주의나 특정 사고방식을 관철하기 위한 것과는 구분돼야 하니까요.
▽김준엽=저는 이번 탄핵 관련 촛불시위의 경우 법규를 어기긴 했지만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국가 전체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한 행동이기 때문에 정당한 시민 불복종의 예라고 생각해요.
▽최승진=그래도 법을 어기고 타인에게 방해가 됐다면 시민불복종이 아닐 수도 있다고 봅니다.
▽서민지=민주주의의 수호와 발전을 위한다는 사고와 의식은 옳지만 법을 어기지 않을 방법이 있었음에도 어긴 것은 잘못이라고 봐요.
▽김영일=저는 탄핵 찬성이나 반대나 시민불복종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정치적 옳고 그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으로 내용 자체의 정당성을 평가하기는 힘들어요.
▽김 교수=시민단체의 활동이나 시민불복종 등이 한 사회가 민주주의화돼 가는 과정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정부가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는 21세기에는 필연적 현상이기도 하죠. 양심적으로 자기주장을 공개하고 성찰하는 일에 사회구성원들이 익숙해지고, 또 그런 과정이 성숙해가면서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습니다.
정리=박혜윤기자 parkhyey@donga.com
■ 법치에 관한 책과 영화들
● 책
▽법치로 가는 길(배리 헤이거 저 좌승희 역·21세기북스)=법치를 위한 기본요소와 법적 역사적 전례를 들어가며 법치 실현을 위한 실제적 지침을 소개.
▽권리를 위한 투쟁(루돌프 예링 저 심윤종 역·범우문고)=개인이 권리를 위해 투쟁할 수 있는 근거를 사법, 국법뿐 아니라 국민생활의 측면에서 다룸.
▽시민의 불복종(헨리 소로 저 강승영 역·이레)=정부의 명령에 대해 폭력 등 적극적 저항수단을 취하지 않고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소극적 저항의 의미를 확립한 고전.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조국 저·책세상)=우리 사회의 진보와 민주를 위해 양심과 사상의 자유가 헌법에만 명시되어 있을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
● 영화
▽네드 켈리(감독 그레고어 조단·2003년)=19세기 후반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던 호주를 무대로 부당한 공권력에 맞서 불법적 저항을 벌였던 실존인물의 삶을 다룬 드라마.
▽존큐(감독 닉 카사베츠·2002년)=보험혜택을 받지 못한 채 죽어가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병원을 상대로 인질극을 벌이게 된 아버지, 그에 대한 법의 처벌을 통해 현실적인 정의와 법의 간극을 조명.
▽분닥세인트(감독 트로이 듀피·1999년)=정당방위로 마피아들을 살해하고 영웅대접을 받은 뒤 ‘세상의 모든 악을 징벌(懲罰)하겠다’며 본격적으로 마피아 살해에 나선 평범한 형제. 그들의 행위는 정의인가, 탈법인가.(추천:김도균 교수)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