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투호타’. 메이저리그 ‘불방망이 투수’ 돈트렐 윌리스의 호쾌한 타격 모습. 5일 현재 타율 0.583, 장타력 1.000으로 풀타임 선발 투수중 최고의 강타자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옛 야구만화를 보면 하나같이 투수가 중심타자로 등장한다. 80년대 초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공포의 외인구단’의 주인공이자 투수인 까치는 처음엔 빠른 발을 이용한 내야 안타나 3루수 키를 살짝 넘기는 단타만 쳤지만 나중엔 홈런도 펑펑 터뜨렸다.
이는 당시 고교야구의 영향을 받은 때문. 실제로 지금도 10대 야구선수들은 대체로 투수가 타격에서도 뛰어난 재질을 보인다.
그러나 82년 프로야구가 생기면서 요즘 야구만화에선 투수가 타격 왕까지 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국내 프로야구가 미국의 아메리칸리그나 일본의 퍼시픽리그처럼 투수는 타석에 서지 않는 지명타자 제도를 도입했기 때문. 요즘 투수의 타격 부활 논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엔 가뜩이나 부족했던 투수진의 부상 방지와 마운드 강화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이에 비해 미국의 내셔널리그와 일본의 센트럴리그는 여전히 투수가 타격까지 하는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해마다 뛰어난 타격 재질을 갖춘 투수 얘기가 쏠쏠한 재미를 안겨준다. 올해는 최희섭의 동료인 플로리다의 돈트렐 윌리스가 마치 만화에서나 나올 듯한 엄청난 호투맹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불방망이 투수’와 관련된 얘기를 모아봤다.》
■ 플로리다 윌리스 불방망이 명성
올해 단연 눈길을 끄는 선수는 윌리스다. 지난해 신인왕을 수상한 그는 시즌 초 2경기에서 평균자책 0.00에 6타수 6안타 1홈런 3타점 3득점의 10할 방망이를 휘둘렀다. 이후 3경기에선 6타수 1안타 1득점에 머물렀지만 5일 현재 시즌 타율 0.583에 장타력은 1.000으로 타석에 자주 나서는 풀타임 선발투수 중에선 그를 따라올 선수가 없다.
브룩스 키쉬니크(밀워키)와 랜디 울프(필라델피아)도 해마다 투수 타격 상위권에 랭크된다. 올해도 거의 5할 전후의 타율로 윌리스에 이어 2,3위에 올라 있다. 특히 울프는 1일 애리조나전에선 안타를 치고 나가 선제 결승득점을 올렸고 지난달 25일 몬트리올전에선 쐐기 홈런을 날렸다.
마이크 햄튼(애틀랜타)은 실버 슬러거상(투수에게 주는 타격상)을 4년 연속 수상한 주인공.
올해엔 타율 0.286(7타수 2안타)으로 랭킹 10걸 안에는 올라 있지 않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투수 강타자는 마이크 햄튼(애틀랜타)이다. 99년부터 2002년까지 투수에게 주는 실버 슬러거상을 4년 연속 수상했던 그의 방망이는 웬만한 하위타선보다 낫다.
휴스턴 시절인 99년 처음 3할 타자(0.311)가 됐고 ‘투수의 무덤’으로 불리는 콜로라도로 이적한 2001년에는 타율 0.291에 7홈런 16타점, 2002년에는 타율 0.344에 3홈런 5타점을 기록했다. 12년간 통산 타율 0.247에 12홈런 62타점 42볼넷. 그는 정확한 선구안과 번트, 그리고 7번 도루를 시도해 3차례나 성공시켰을 정도로 주루 플레이도 능한 3박자 선수다. 그가 2001년 당시로선 투수 최고였던 8년간 1억2100만달러의 대박을 터뜨릴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타격재질도 크게 한몫을 했다는 평가다.
아이스하키 선수 출신으로 90년대 초중반 역시 실버슬러거를 4번 수상했던 톰 글래빈(뉴욕 메츠)은 애틀랜타 시절 자신이 등판하지 않는 날 왼손 대타로 가끔 출전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90년대의 팀’으로 불렸던 애틀랜타는 당시 존 스몰츠, 그렉 매덕스(시카고 컵스), 글래빈의 투수 삼총사가 돌아가면서 실버 슬러거를 수상, 사상 최고의 9번 타순을 형성했다.
이밖에 올해 부상으로 결장중인 신예 마크 프라이어(시카고 컵스)는 2년간 통산 타율은 0.224에 1홈런 10타점이지만 야구 전문가로부터 가장 뛰어난 타격 재질을 갖춘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 박찬호 봉중근 김병현도 타력 막강
타격 연습중인 김병현. 그는 2001년 메이저리그에서 안타 1개를 쳤다. 또한 광주일고시절엔 4번타자로 활약 했었다.
2002년부터 아메리칸리그로 옮기는 바람에 타석에 설 기회가 없어졌지만 박찬호(텍사스)의 방망이도 LA다저스 시절 꽤 유명했다. 통산 타율은 0.168이지만 2000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빅리그 홈런타자가 됐고 58안타 중 홈런 2개, 3루타 1개, 2루타가 15개나 될 정도로 장타력도 뛰어났다. 타격 연습 때면 펜스를 넘기는 홈런 타구가 펑펑 쏟아져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김병현(보스턴)은 애리조나 시절 마무리로 뛴 탓에 타석에 설 기회가 거의 없었다. 데뷔 3년째인 2001년에야 비로소 안타 1개를 쳤는데 그날 인터뷰에서 “나도 광주일고 때는 4번타자로 타격왕 출신이었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이에 박장대소를 했던 팀 동료들은 김병현에게 실버 슬러거 상을 본떠서 은박지로 만든 방망이 네 자루를 선물하기도 했다. 통산 타율 0.188.
타격 재질로만 보면 가장 눈에 띄는 선수는 신일고 시절 투타에서 맹활약을 했던 만능선수 봉중근(신시내티). 주로 중간계투로 나서는 바람에 통산 7타수 무안타에 머물고 있지만 전 소속팀 애틀랜타는 그를 타자로 전향시킬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기도 했다.
이에 비해 서재응(뉴욕 메츠)은 타율이 1할에도 못 미친다. 삼진을 당하는 횟수가 절반에 가깝다. 김선우(몬트리올)도 타격 재질이 있어보이지는 않지만 시즌 첫 승을 거둔 3일 LA다저스전에선 동점의 발판이 된 안타와 한국인 투수 첫 도루를 성공시켰다.
한편 동양인 첫 홈런은 일본인 투수 노모 히데오(LA다저스)가 98년 처음 기록했다. 노모의 통산 타격 성적은 타율 0.135에 3홈런 25타점.
■ 최동원 승리투수-결승타 1호
지명타자 제도가 있다고 해서 투수에게 전혀 타격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잦은 선수 교체로 경기 막판 더 이상 타자가 없을 경우 투수가 타석에 서야 한다.
국내에선 롯데 최동원이 84년 결승 2타점 2루타를 날려 승리투수와 결승타를 동시에 기록한 1호 투수가 됐다. 해태 선동렬(삼성 코치)은 국내에선 4타수 무안타에 머물렀지만 일본 주니치 시절인 99년 쐐기 2타점 2루타를 날린 적이 있다.
이밖에 투수가 타자로 전향해 대성한 경우는 삼성 이승엽(롯데 마린스)과 롯데 김응국(코치)이 있고 기아 이대진은 어깨에 이상이 오자 한때 타자로 나서기도 했다.
메이저리그 투수 타격 10걸(5일·7타수 이상)순위선수타격 성적투수성적①돈트렐 윌리스(플로리다)0.583 12타수 7안타 1홈런 3타점3승 2.73②브룩스 키쉬니크(밀워키)0.571 7타수 4안타 1타점1승1.50③랜디 울프(필라델피아)0.455 11타수 5안타 1홈런 2타점2승1패2.78④브라이언 로렌스(샌디에이고)0.444 9타수 4안타 1타점3승2패5.64⑤올리버 페레즈(피츠버그)0.429 7타수 3안타2승3.16⑤웨스 오버뮬러(밀워키)0.429 7타수 3안타 1타점1승1패8.49⑦스티브 트락셀(뉴욕 메츠)0.333 12타수 4안타 2타점2승3패3.79⑦웨이드 밀러(휴스턴)0.333 9타수 3안타 2타점3승2패 3.38⑨매트 모리스(세인트루이스)0.313 16타수 5안타 4타점3승2패3.56⑩제프 위버(LA다저스)0.300 10타수 3안타1승3패6.07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