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의 음식 이벤트. 올 월드 구어메 서밋에서 펼쳐진 연극과 음식의 만남 ‘미스터리 추리극 만찬’. 조성하기자
지난달 24일 저녁 싱가포르 시내 그랜드하야트(호텔)의 양식당 ‘메차 9’. ‘월드 구어메 서밋(세계 미식가 대회)’의 주요 이벤트인 ‘갈라 디너(행사를 겸한 만찬)’가 열렸다. ‘블랙 타이(턱시도와 드레스 차림)’라는 드레스 코드(요구되는 옷차림)가 말해주듯 격조 있는 미식가의 식도락 파티다.
식도락은 리셉션(식사에 앞서 가벼운 음료와 식사를 즐기며 대화를 나누는 공간)에서부터 시작됐다. 월드 구어메 서밋에 초빙된 호주 벨기에 프랑스 미국 캐나다 등에서 온 12명의 요리사가 각자 테이블을 차리고 즉석에서 시그니처 디시(자신의 대표적인 요리)를 만들어 제공 중이었다. 웨이터들은 선 채로 맛을 보는 손님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아페리티프(식욕을 돋우는 식전음료)로 샴페인과 와인을 권했다.
한 시간의 식전 ‘식탐’. 이것만으로도 425싱가포르달러(약 37만원)의 참가비가 아깝지 않았을 만큼 음식 맛은 환상적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식당 문이 열리고 테이블에 앉자 만찬은 시작됐다. 2시간반 동안 전식부터 후식까지 무려 일곱 가지 음식이 제공되는 세븐코스 디너였다. 허다한 만찬장에 가 보았지만 세븐코스 디너는 처음일 만큼 흔치 않은 자리다. 음식만큼이나 테이블 장식도 화려했다. 크리스털 글라스 4개(와인잔 3, 물잔 1개)와 순은 포크 등이 세팅됐다. 웨이터는 손님 2명당 1명씩 배정됐고 코스마다 200여명의 웨이터가 동시에 들어와 서브했다.
월드 구어메 서밋의 ‘갈라 디너’에서 초청된 쉐프가 정성들여 음식을 만드는 모습. 조성하기자
코스마다 와인도 바뀌었다. 월드 구어메 서밋에 초청된 12곳의 세계적인 와인메이커가 음식 맛과 가장 잘 어울리는 것으로 엄선한 것들이다. 코스마다 실내 모니터로 요리사와 와인메이커를 상대로 한 인터뷰를 방영해 요리와 와인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와인이 바뀌면 잔도 바뀌는 법. 이날 테이블에는 한 사람당 총 20여개의 글라스가 동원됐다. 한 테이블에서 이렇게 많은 종류의 와인을, 그것도 세계 각국 와인메이커의 전문가가 세상의 미식가를 위해 엄선한 와인을 하나씩 차례로 맛보며 세븐코스 디너를 즐기는 호사를 지구상 어디에서 다시 누릴 수 있을까.
다음날은 일요일. 이날은 ‘선데이 브런치(아침을 겸한 점심식사)’에 참석했다. 장소는 야자수 사이로 바다가 조망되는 센토사 섬 언덕의 ‘센토사 리조트 앤드 스파’(호텔) 야외식당. ‘뒤발르로이 및 노르웨이 시푸드와 함께하는 샴페인 브런치’라는 행사 이름에서 보듯 이 식도락 파티는 세계적인 샴페인 메이커 뒤발르로이(프랑스 보르도 소재)가 제공하는 샴페인을 노르웨이의 세계적인 해산물가공업체 ‘노르게’사에서 제공하는 연어 바닷가재 머슬(홍합) 등 해산물로 만든 요리와 함께 즐기는 행사였다.
잔디정원까지 갖춘 2층 건물 수백평 규모의 실내외 공간 20여곳에 음식이 진열됐고 그 사이사이에서는 과일주스와 탄산음료, 맥주와 와인, 샴페인 등 마실 것을 무제한으로 제공됐다.
지난해 싱가포르 푸드 페스티벌에서 선뵌 ‘사자와 함께 식사를’. 조성하기자
적도(싱가포르는 적도 근방)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 나무그늘에서 야자수 사이로 보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신선한 노르웨이 산 연어 등 해산물 요리를 톡 쏘는 듯한 알싸함이 일품인 샴페인과 함께 즐기는 일요일 정오의 한가로운 브런치 식도락. 정원에서 연주되는 흑인밴드의 재즈까지 곁들여 환상적이었다.
월요일 만찬 역시 특별했다. 연극이 접목된 디너였다. 이름 하여 ‘미스터리 추리극 만찬’이다. 아가사 크리스티류의 추리극이 손님을 가장해 참석한 배우들의 테이블에서 만찬 내내 펼쳐졌다. 범인을 맞힌 참가자에게는 왕복항공권을 제공하는 경품행사도 있었다.
월드 구어메 서밋은 이런 다양한 식도락 행사로 매년 4월에 2주간 진행된다. 방식은 이렇다. 주최측은 12개의 식당을 선정하고 이 식당은 외국에서 활동하는 최고의 요리사 12명을 초빙한다. 이들은 주최측이 마련한 이벤트(요리 및 와인강습, 갈라 디너 등)와 초청식당의 특별 요리 전에 참가해 요리를 낸다.
미식가들은 관심이 가는 요리사나 요리, 식당 및 이벤트를 찾아 예약하고 음식 맛을 본다.
올해 초청된 요리사는 미국 칠레 호주 벨기에 이탈리아 캐나다 등지에서 왔다. 노르웨이 요리사 2명은 해산물 요리를 위해 ‘올해의 요리 대사(Ambassador chef)’로 참가했고 미국의 허드슨밸리 포아그라 회사 대표는 거위간 요리 강습을 위해, 세계 최고의 요리학교인 르 코르동 블루(파리 소재)의 요리사 2명 등은 요리 시범을 위해 특별 초청됐다.
이 행사의 매력 가운데 하나는 12곳의 와인메이커가 요리마다 가장 잘 어울리는 와인을 선정해 미식가들에게 제공하는 와인 맛보기.
와인메이커로는 프랑스 보르도에서 9번째로 큰 샴페인메이커 뒤발르로이와 미국 캘리포니아주 나파밸리의 조지프 펠프스 와이너리 등 12곳이 참가했다. 초청 레스토랑으로는 리츠칼튼 밀레니아 싱가포르(호텔), 더 펄러턴, 그랜드하야트 등 12곳이 선정됐다.
●여행정보
◇음식
▽월드 구어메 서밋(www.worldgourmetsummit.com)=매년 4월에 열리는데 올 행사는 4월 19∼30일이었다. 이벤트 참가는 선착순으로 사전 예약은 필수. ‘드레스코드’는 반드시 지키도록 한다.
▽싱가포르 푸드 페스티벌(www.singaporefoodfestival.com)=올해부터는 매년 7월 한 달간 열린다. 수백개 이벤트가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진다.
◇여행
▽싱가포르 관광청(서울사무소·www.visitsingapore.or.kr, 02-399-5570)=관광청에서 무료 배포하는 ‘스텝 바이 스텝 가이드 싱가포르’ 한글 안내서(73쪽)는 싱가포르 여행에 관한 내용이 상세히 들어 있어 자유여행자에게 유용하다. 처음 찾는 여행자의 눈높이에 맞춰 하루 일정별로 안내하고 있어 일정을 짜기에도 요긴하다.
▽싱가포르항공(한국사무소·www.singaporeair.com/kr, 02-755-1226)=‘항공권+숙박권(호텔 2박·조식 포함)+공항셔틀버스+반나절 버스투어’의 에어텔 패키지가 판매 중. 39만9000원부터. 6월 말까지. 7일까지 구입하고 5월 중 출발하면 1박을 추가로 제공(무료)한다.
싱가포르=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