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자동차보험은 자기차량 손해담보의 보험료를 책정할 때 배기량과 차량가격만을 기준으로 하고 자동차 제조사별, 모델별로 상이한 수리비의 차이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자동차 사고시 배기량과 차량가격이 동일하더라도 모델별로 수리비가 다른데도 보험료는 동일하게 책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수리비가 낮은 자동차가 수리비가 높은 자동차의 보험료를 보전해주는 불합리한 결과가 생기고 있다.
차량 모델별로 객관적인 등급평가에 따라 보험료를 차등화할 경우 이런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선진국은 기존차량의 경우에는 모델별 보험금 지급실적을 분석하고, 신차의 경우는 충돌실험을 통해 보험금 지출 위험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해 보험료를 차등화하고 있다.
우리 차량에는 세트로 돼 있는 부품이 많다. 이런 세트 부품은 작은 부분 하나만 고장 나도 세트를 통째로 바꿔줘야 한다. 멀쩡한 부품까지 교체하게 되니 경미한 손상에도 과도한 수리비를 지출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손상성·수리성의 부족 때문인데 차량의 구조설계나 부품 제작 때 손상성·수리성을 별로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차량 모델별 보험료 차등화가 이뤄지면 평가등급에 따른 보험료 수준이 소비자에게는 차량구매시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다. 소비자는 우수한 등급의 차량을 선호할 것이고, 자동차 제작사는 자동차의 손상성·수리성을 개선하고 부품가격을 적정화하려 노력할 것이다. 그 결과 차량 수리비가 절감되고 보험사의 손해율 역시 감소될 것이니, 차량 소유자는 보험료 등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된다.
모델별 보험료 차등화는 수리비에 관련된 기술적·경제적 문제를 소비자, 보험사, 자동차사가 함께 해결하는 제도로 영국 독일 스웨덴 등 자동차 선진국들은 이미 30여년 전부터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이처럼 모델별 보험료 차등화는 산업간의 견제와 균형을 통해 효율적인 자원배분과 사회적 비용 절감을 유도할 수 있는 제도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신차 개발비의 상승이나 부품판매 수익의 감소를 우려한 자동차업계의 이해 때문에 모델별 보험료 차등화 도입이 지연되고 있다. 주요 수출국에서 차량모델별로 등급평가를 받고 있는 자동차사가 정작 국내에서 이 제도의 도입을 꺼리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차량등급평가에는 공정성과 객관적인 기준이 필요하다. 이미 보험개발원에는 차량 모델별로 연간 약 100만건에 이르는 보험금 지급실적 자료와 산하 자동차기술연구소가 시행하는 충돌시험 자료가 계속 집적되고 있다. 등급평가의 객관성을 확보할 근거가 있는 것이다. 손상성·수리성에 따른 차량등급 평가결과는 차량 안전성의 평가와는 다른 것으로, 외국에서도 차량등급평가는 손상성·수리성 전문연구기관이 담당하고 있다.
모델별 등급평가에 의한 보험요율 차등화는 정책규제가 아닌 시장기능에 의한 산업별 자율규제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는 동시에 자동차사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제도이기도 하다. 차량모델별 보험료 차등화제도의 조속한 도입을 위해 정책당국이나 보험업계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이근창 영남대 교수·보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