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꼬라지는 사람 형국을 하고 있어도 나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 맞다. 어머니 말씀이. 그런데 과연 나는 사람일까?
어느새 나도 반백이 넘었다. 이 날까지 살아오면서 제 어머니 가슴에 수없이 못을 박으며 불효한 나는 사람일까?
아무래도 나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송현 시인)
우리는 엄마 앞에서 엄마의 힘 앞에서 엄마의 영향력 앞에서 달아나지 못한다. 어마의 사랑과 화고한 요구를 피해가지도 못한다. 또, 엄마가 모든 일에서 자기 생각을 밀고 나가려는 것을 막지 못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엄마에 속해 있다. 엄마는 언제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미하엘 숍하우스)》
◇어머니 발등에 입을 맞추고/김승희 외 지음/284쪽 8000원 자유로운 상상
◇어머니는 힘이 세다/미하엘 숍 하우스 지음 선우미정 옮김/304쪽 9800원 들녘
어버이날을 맞으면 누구나 감상적이 된다. 자식 된 이들의 입에서는 목 메인 ‘불효자를 용서하십시오’가 마땅히 흘러나와야 하고 회한에 차야 한다. 그 순간만큼 어머니는 지상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가장 성스러운 존재다.
하지만 뉴스를 보라. 과연 모든 어머니가 그러한가. 독일에선 자기 아기를 인터넷 경매에 내놓는 비정한 미혼모가 나왔고, 한국에서도 구속받기 싫어 돌 지난 아기를 백화점에 버린 철부지 엄마가 있었다.
모성애는 본능일까, 아니면 사회적으로 훈육되는 것일까.
‘어머니 발등에 입을 맞추고’는 그런 모성애에 대한 과거 사례 조사라 할 만하다. 연기자 시인 영화감독 학자 등 우리시대 유명인사 23명의 어머니에 대한 회고록을 모았기 때문이다. 1900∼30년대에 태어난 그 어머니들은 한결같이 우리 심성에 자리 잡은 어머니의 ‘원형’과 닮았다.
일자무식이건 신식여성이건 간에 그들은 투사였다. 가족의 생존을 위해서든, 가부장제적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든 그들은 세상과 싸워야 했다. 그러나 그들의 싸움방식은 아마존의 전사가 아니라 간디를 닮았다. 그들의 무기는 무한한 인내와 아낌없는 희생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어머니가 젊었을 때 이 땅에 여성법률상담소나 여성인권운동단체 같은 것이 없었던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한다. 만일 그랬다면 우리 아버지는 그날(이혼하는 날)로 자포자기해서 온종일 술만 퍼마시다 완전히 폐인이 되셨을 거고, 우리 남매는 보육원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시인 송현의 이런 신파조 고백은 아들들의 죄의식을 대변한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평생 사랑을 이기적으로 대했던 아버지의 장례식 날 눈물이 나오지 않아 쩔쩔매다가 하관할 때 그 관에 매달려 우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비로소 눈물을 흘렸다는 영화감독 정지영. 한겨울 며느리와 쇼핑을 나갔다 돌아올 때면 아들이 찬바람 쐬는 게 싫어서 “내가 다 들고 갈 테니 아비를 부르지 마라”고 했던 어머니, 그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 “하룻밤만 자고 가라”고 붙드는 것을 들어드리지 못해 지금도 회한에 젖는다는 이강숙 프랑크푸르트도서전 주빈국 조직위원장….
이에 비해 딸들의 기억에는 묘한 질투와 함께 짙은 동지애가 묻어난다. 그래서 더욱 현실적이다.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서는 불가능을 몰랐으며 우리 가족은 모두 그런 비이성적 모성애란 것을 증오했다.” (김정호 진도문화원장)
“내 딸이 아무리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어도 언제까지나 나의 가장 아픈 속살이듯이, 나 또한 어머니의 가장 아픈 속살일 것이다.” (소설가 오정희)
23편의 사연을 읽으며 문득 그 속에서 ‘어머니의 원형에 더 가까운 사연이 무엇일까’를 찾고 있음을 깨달았다. 모든 모성은 평등한 것이 아니란 말인가. 혹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모성애의 신화화에 가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머니는 힘이 세다’는 그런 의문에 대해 비교적 객관적인 답을 제시했다. 독일의 남성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그 어떤 학술적 논리도 아닌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로 이를 서술했다. 그는 임신한 아내를 대신해 암에 걸린 아들을 간호하느라 소아암 병동을 지키면서 같은 처지 ‘어미’들의 친구가 됐다. 그곳은 경제적 부와 사회적 지위를 무화시키는 모성애의 본능만이 발현되는 공간이었다. 저자는 거기서 부성애로는 도저히 미칠 수 없는 모성애의 위대함을 발견했다.
“병원은 엄마들의 정글이었다. 병원은 두려움을 제압하는 데 성공했을 때만 살아남을 수 있는, 오직 강하고 위험자각 능력이 뛰어난 사람만이 통과할 수 있는 곳이었다. (…) 나는 병원에서 엄마들이 어떻게 소리를 지르면서 침입자의 멱살을 움켜쥐는지를 확실히 보았다. 그들이 바로 어미짐승이었다. 진짜 어미짐승이었다.”
저자는 아내를 대신해 그 ‘어미짐승’들과 함께 2년간 아들 곁을 지켰다. 그러나 아들이 끝내 숨을 거두는 순간 아내의 뒤로 물러섰다. 남자인 자신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슬픔이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