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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예술]‘…디카 세상’ 우리는 ‘디카’한다…고로 존재한다

입력 | 2004-05-07 17:23:00

사진 촬영할 때 앉아서도 안 되면 바닥에 드러눕는다. 쑥스러움은 잠시일 뿐, 사진은 영원히 남는다. 저자가 최근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우스꽝스러운 사진촬영현장을 디카로 찍은 사진. 사진제공 윤광준


◇윤광준의 아름다운 디카 세상/윤광준 글·사진/307쪽 1만2000원 웅진닷컴

사진작가의 집에는 카메라가 넘쳐 났다. 그런데도 새내기 대학생인 아들은 ‘디카(디지털 카메라)’를 사달라며 고집을 부렸다. 결국 아들은 ‘폰카(휴대전화 카메라)’로 자기만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들의 컴퓨터를 몰래 열어 본 아버지는 깜짝 놀랐다.

‘한장 한장에 생동감과 자유분방함이 묻어 났다. 필름 사진의 정제미와 세련미를 대신하는, 리얼리티와 역동성을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는 당장 디카를 선물하기로 마음먹었다. 얼마 뒤엔 사진작가인 자신이 디카 마니아가 됐다.

이 책은 40대 전문 사진작가가 풀어 놓는 ‘디카 매력 탐방기’이자 디카가 세상을 바꾸는 힘에 대해 사유한 ‘디지털 명상기’다. 전문가로서 디카족에게 주는 사진 테크닉의 조언도 풍성하게 담겨 있다.

저자는 ‘디카야말로 개인의 숨겨진 표현 욕구를 실현해 주는 가장 강력한 도구’라고 말한다. “디카가 있는 한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삶을 동경하지 않는다. 자신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가능성 앞에서 자신의 삶이 누추하지만은 않은 것이다.” 자동차가 공간과 이동의 자유를 맛보게 했다면, 디카는 생각하는 것과 보는 것의 자유를 준다는 것이 저자의 디카 철학이다.

한편 디카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소유욕을 만족시킨다.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담아두어야 한다. 인간은 결국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을 사물화(私物化)하고 싶은 것이다.” 디카는 지금까지 잡을 수 없었던 지나간 시간을 소유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디카는 원 없이 써야 한다. 열심히 놀아 보아야 한다. 체험을 모아 무엇인가 만들어 내야 한다. 아껴 두는 동안 삶은 덧없이 흘러가 버린다”고 말한다.

무엇이 기존의 필름 카메라와 다른 이런 ‘디지털 사진’만의 미학을 만들어 낼까. “대충 찍어서 나중에 손보면 된다. 이것이 디카 시대의 새로운 방법론이다.” 필름과 인화지라는 소모품에서 벗어난 사진은 ‘사명감’이 아니라 ‘즐거움’으로 찍는 것이다. 필름 카메라 사용자들은 멋진 풍경이나 인물이라도 좋은 구도로 준비돼 있지 않다면 셔터를 누를 수 없다는 강박감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디카 사용자들은 장소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분방한 내용을 담는다.

같은 ‘사진기’지만, 디카와 필름 카메라에 접근하는 자세란 이만큼이나 다르다. 젊은 세대는 ‘카메라’라는 말에 곧바로 디카를 연상하지만, 그와 반대인 아날로그 세대가 디지털로 전향하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저자는 ‘사유방식을 변화시키는 디카의 힘’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이와 별도로 기존의 카메라가 지닌 물성(物性), 즉 한번의 작업으로 완성되는 ‘단일성’의 힘 역시 폐기될 것이 아니라 공존의 대상임을 잊지 않고 강조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디카족을 위한 실용 테크닉▼

△같은 화소 수라면 감광소자(CCD)가 큰 카메라를 고른다. 어두울 때 위력을 발휘한다.

△내장 플래시는 장난감 수준이다. 어두울 땐 차라리 카메라의 감도를 최대로 올린다.

△줌 렌즈에 대한 과신은 더 좋은 순간 포착의 기회를 막는다. 몸을 움직여 찍어보라.

△디카의 자동노출 기능은 진보의 극치다. 초보자나 사용한다는 생각은 근거가 없다.

△조명에 따라 ‘화이트 밸런스’만 제대로 바꾸면 사진 표현의 즐거움이 몇 배 커진다.

△배경을 흐리게 해 분위기를 내려면 렌즈를 망원 모드로 하고 모델에 다가가 찍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