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형 인간, 강요하지 마라/이우일 외 18명 공저/216쪽 1만원 청림출판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중에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그림이 있다. 고흐는 많이 아팠다. 정신분열증으로 귀를 자르고 우울증으로 밤잠을 이루기가 힘들었다. 그는 밤새 그림을 그리며 고통을 삭였고 새벽에야 잠들 수 있었다. 아침에 고흐를 흔들어 깨워서, 행복한 삶을 위해 지금부터 운동을 하고 그림을 그리라고 이야기한다면 곤란하지 않을까?”
대학의 기말고사 시험문제로 ‘성공률 100% 키스법’과 같은 문제를 출제했던 엽기 미술강사 정효찬, 만화가 이우일, 홍익대 앞 클럽문화 연구가 이무용, 소설가 원재길, 인터넷 칼럼니스트 듀나 등 내로라하는 ‘올빼미족’ 18명이 모여 ‘아침형 인간’에 반기를 들었다. 그들은 외친다. “아침형 인간은 또 다른 새마을운동이다!” “아침형 인간엔 사람을 닭 취급하려는 음모가 있다!” “밤에 일일연속극이나 보고 자라는 반문화적 선동이다!”
‘아침형 인간’은 저녁에 푹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 그러나 회사는 결코 숙면할 수 있도록 퇴근시간을 앞당기거나 업무스트레스를 줄이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대신 밤늦게까지 일하고도 아침에 일찍 출근하고 자기 계발하는 사람을 인정해 준다. 결국 회사는 ‘저녁형 인간’과 ‘아침형 인간’을 동시에 원한다.
“닭들이 잠들면 모이 먹고 살찌우는 시간도, 알 낳는 시간도 줄어들기 때문에 닭장에는 24시간 전등불을 켜둔다. 기업도 사람들이 잠들지 않거나, 덜 잠자고 새벽 일찍 일어나 영어학원이나 헬스장도 다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런 거지 치킨 같은 경우가 어디 있을까.”(카피라이터 오린)
이들은 ‘아침형 인간’에 대한 획일화된 강요는 과거 태양의 빛과 온기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던 시대의 것이며, 시공간이 자유로운 ‘디지털시대’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창조력과 상상력이 가치를 낳는 디지털시대에는 밤이 더욱 중요해진다고 강조한다.
창업컨설턴트 이형석씨는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말은 농경사회에서나 어울릴 법한 얘기다. 새가 꼭 벌레만 먹을 이유는 없다”고 말한다. 그는 대신 ‘아침 일찍’을 고집하지 않는 업종으로 창업하라고 조언한다. 옥션에서 ‘하자’ 있는 명품을 파는 것으로 돈 벌이를 하는 박치영씨(30)도 밤을 즐기며 일하는 사람이다. 요즘 찜질방에서는 오전 2시에 여는 ‘26시 영화관’도 인기다.
여행칼럼니스트 김은령씨는 오후 11시부터 오전 4시까지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이 시간엔 런던의 재즈광들이 로니 스코트에서 열광하고 있으며, 방콕이 도시의 진짜 매력을 드러내고, 일본 삿포로의 라면집이 출출한 배를 달래주는 시간이다. 일찍 자는 여행객들은 결코 맛볼 수 없는 소중한 ‘나이트 라이프’다.
그러나 동틀 때 잠이 드는 느긋함을 예찬하는 저자들의 직업은 대부분 프리랜서. 이들의 ‘밤 예찬론’이 직장인들에게는 부럽지만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