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 핸드북/일다 바리오 개리스 젠킨스 지음 윤길순 옮김/456쪽 1만5000원 해냄
그는 이제 모든 곳에 있다. 세계화에 반대하는 시위대의 깃발에, 록밴드의 공연장에, 전위적인 카페의 벽화에, 담배케이스에, 마우스패드에, 시계판에, 티셔츠에….
20세기가 낳은 그 어떤 대중스타보다 현재형으로 존재하는 체 게바라(1928∼1967).
두 명의 쿠바인 저술가가 체 게바라의 삶과 사상을 추적해 핸드북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런 내용을 압도하는 것은 이 책 속에 담긴 250여장의 사진이다. 그 자신이 사진 찍기를 좋아했던 체 게바라는 마치 사진기와 은밀하게 대화를 나누듯 열정과 분노, 자신만만과 섬세함의 감성을 찰나의 잊을 수 없는 포즈로 남겨놓았다.
왜 게바라는 이토록 강력한 문화코드가 된 것일까. 혁명가로서 그의 순결성은 더럽혀질 시간이 없었다. 그는 살아남은 그의 동지들처럼 늙거나 변절하거나 이미 이뤄진 체제를 경영하는 관료가 되어 젊은 날의 약속을 스스로 배반하기 이전 전투 중에 숨졌다.
프로이트와 러셀, 스탈린과 에밀 졸라를 편견 없이 읽었으며 시가 피우기를 즐겼고 골프와 야구를 좋아했던 그는 ‘사랑만이 혁명을 완성한다고 믿는’ 열정가였다. 21세기의 대중이 그에게 사로잡히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가 꿈을 꾸는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이 저를 모험가라고 부를 겁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종류가 다르지요. 저는 제 자신의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모험가니까요.’(부모에게 보낸 편지 중)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