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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베토벤의 머리카락’…베토벤의 머리카락 한움큼

입력 | 2004-05-07 17:31:00


베토벤의 머리카락

러셀 마틴 지음 문명식 옮김

320쪽 1만3000원 지호

‘경매번호 33. 베토벤의 머리카락 300가닥. 추정가치 2000∼3000파운드, 진품 보장.’

1994년 11월 초. 런던 소더비 경매목록에 묘한 물건이 올라왔다. 이 경매에 죽은 지 200년이나 된 사람의 머리카락이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베토벤의 유품도 아니고 베토벤의 일부였던 것이다. 결국 이 머리카락은 두 명의 미국인에게 7300달러에 팔렸다.

이 책은 베토벤이 죽은 다음 날 잘려나간 머리카락 한 뭉치에 대한 이야기다. 논픽션 전문작가인 저자는 94년 ‘베토벤의 머리카락’에 대한 언론보도를 접한 뒤 2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머리카락의 행방에 대해 집념어린 추적을 벌인다.

1827년 봄. 베토벤의 친구였던 후멜은 15세 된 제자 페르디난트 힐러를 데리고 베토벤의 집으로 찾아갔다. 후멜은 자신의 제자가 이 위대한 음악가를 만나 영감을 얻기를 바랐다. 베토벤이 죽자 다시 찾아간 힐러는 그의 주검에서 머리카락 한 뭉치를 잘라냈다. 그리고 그는 리스트와 멘델스존, 베를리오즈와 동시대 음악인으로 살아가면서 항상 베토벤의 머리카락을 품고 다녔다.

힐러는 그것을 유리로 밀봉된 로켓에 넣어 아들의 30세 생일선물로 물려주었다.

이후 이리저리 세상을 떠돌던 ‘베토벤의 머리카락’은 140년 뒤 덴마크의 한 외딴 항구도시에서 발견된다.

이 머리카락은 나치에 쫓기고 있던 한 유대인의 목숨을 구해준 대가로 덴마크의 한 의사에게 건네졌다.

저자는 1943년 10월 이 도시의 시골교회 다락방에 숨어 있던 120명의 유대인이 나치경찰에 체포되던 그날 밤의 사연을 생생하게 재현해 낸다.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 ‘운명’의 제1주제음은 20세기 인류의 불안한 미래를 예고한 운명의 두드림이었다.

‘베토벤 머리카락’의 유랑사는 20세기 역사 속에서 베토벤의 혁명적 음악정신과 이것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는 자신의 생일 축하곡으로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을 연주하게 하는 등 베토벤을 독일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도구로 이용했다.

반면 연합군은 5번 교향곡 ‘운명’의 세 번 짧고 한번 긴 박자(단단단 다-)가 모스부호 ‘V’와 같다고 승리(Victory)의 상징으로 썼다.

베토벤의 머리카락에 대한 DNA분석을 통해 그가 지녔던 질병과 청각장애, 죽음의 미스터리를 푸는 작업도 흥미롭다.

검사결과 베토벤의 머리카락에서는 건강한 사람의 것보다 100배나 많은 납이 검출됐다.

반면 당시 성병치료 연고제로 쓰이던 수은성분이 발견되지 않아 베토벤이 매독에 시달렸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