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유비, 장비, 관우, 공명, 조조
◇하룻밤에 읽는 삼국지/표정훈 편역/325쪽 1만원 랜덤하우스중앙
꼭 삼국지를 하룻밤에 읽어야 할까? ‘빨리빨리’에 익숙한 세상에 비위를 맞추려는 속셈이 아닐까? 그렇지만 ‘책머리에’를 보면 이 책만 하룻밤에 읽고 끝내라는 뜻은 아닌 것 같다. ‘삼국지라는 망망한 대해에 뛰어들기 전에 비교적 안전한 수영장에서 워밍업이라도’ 하고 싶은 독자를 염두에 두었다고 글쓴이는 말하니까.
사실 “안전한 수영장 필요 없어, 바다를 보여줘!”라고 말할 독자에게도 이 책은 충분히 유용하게 쓰일 만하다. 기나긴 삼국지를 읽어치운 뒤 오히려 그 역사적 배경이 궁금해진 독자에게 이 책은 ‘예습용’ 아닌 ‘복습용’으로 도움을 줄 듯하다.
독자는 먼저 1부 ‘삼국지의 탄생과 배경’에서 충분한 워밍업을 하게 된다. 삼국이 정립하기 이전 중국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정색하고 딱딱하게 쓴 진수의 역사서 ‘삼국지’로부터 소설 ‘삼국지’가 태어난 과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를테면 삼국지 신입생을 위한 ‘오리엔테이션’ 격이다.
본격적인 삼국지의 내용은 2부 ‘삼국지 펼쳐 읽기’에서 막을 올린다. 230쪽 남짓한 분량에 장대한 ‘삼국지’의 줄거리를 쏟아 붓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문제는 ‘삼국지’ 주요 장면들을 키워드별로 세 쪽 안팎씩 낱개의 장(章)에 정리해 해결했다. 그런데 본문보다도 도해가 ‘장난이 아니다’. ‘십상시의 난’을 설명하면서는 후한의 정치구도를 전과식 그래픽으로 나타내고, ‘공명과 사마의의 진법 대결’ 장에서는 비슷한 시기 주변 국가의 역사를 연표로 정리하는 식이다. 이를 통해 위나라가 촉나라 오나라와 대결하면서 고구려와도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는 사실까지 알 수 있다. 연대마다 세력 판도를 나타낸 지도나 전투 장면의 전황 전개도, 주요 무기의 도해식 설명 등은 ‘기본’이다.
그러나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무엇보다 3부 ‘삼국지 깊이 읽기’다. ‘삼국지를 모르고 논술을 논하지 말라’는 말처럼, 삼국지는 온갖 지혜와 사색이 펼쳐지는 ‘논리의 보고’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조조와 의로운 수단을 중시하는 진궁, 어느 쪽이 과연 바람직한 인간형일까. 실리보다 의리를 중시한 유비는 과연 실리에는 문외한이었을까. 법가적 패도정치형의 ‘무서운’ 인간이었던 제갈공명이 어떻게 ‘덕과 포용력’의 유비와 어울리는 짝을 이루었을까. 갖가지 분석에 자잘한 역사 추적까지 곁들여진다. 유비는 화베이(華北)지방 출신, 공명은 산둥(山東)지역 출신.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대화가 가능했을까. 글쓴이는 ‘아마도 필담을 사용했을 것이다’라고 추측한다.
출판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저자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린이용 문고판 삼국지를 처음 읽었고, 그 뒤 월탄 박종화의 삼국지, 고우영의 만화 삼국지, 김구용 황병국 조성기 이문열 황석영…. 기억도 다 못할 만큼 많은 저자의 ‘삼국지’와 만났다고 고백한다.
“삼국지에 관한 책이라면 일단 사고 보는 습관이 들어버렸다. 이 책은 나의 ‘삼국지’ 편력의 작은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