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설은 정녕 안 읽히고 있는가? 그렇다. 아주 죽어라 안 읽히고 있다.”
젊은 국문학 연구자 천정환씨(35·서울대 강사·사진)가 다음주 나올 계간 ‘파라 21’ 여름호에 쓴 글의 첫 대목이다. 글 제목은 ‘2000년대의 한국소설 독자’. 그는 “지난해 교보문고 매출액을 보면 소설 점유율은 6.7%로 인문서 7.4%보다 낮다”고 개탄했다. 그나마도 ‘독서 강권 프로그램’인 ‘!느낌표’와 베스트셀러인 ‘삼국지’ ‘해리 포터’ 등이 없었다면 ‘반은 잘렸을 규모’라는 것이다. 그는 “이런 글을 엄숙하게 쓰고 싶진 않다”며 블랙유머가 가득한 시니컬한 어조로 ‘왜 한국소설이 이다지도 망가졌는지’를 밝혔다. 천씨의 글을 요약해 게재한다.》
높은 권위의 문학상을 받은 한 여성작가의 소설을 읽다가 분통이 터졌다. 비분강개하고 싶어졌다. (한국소설은) ‘아주 망해도 좋다’는 느낌이었다. 유부녀 불륜담에 개똥철학, 괴이한 대화에 미숙한 문학소녀의 독백, 재미도 영양가도 없었다. 환장할 건 중견 평론가들의 ‘선정의 변’. 서사문학의 새 장을 연다는 둥 종이 위에 잔뜩 애를 써놓았다. 이런 무차별적인 고무찬양이라니. 이러니 독자들이 떠나갔구나.
작가 선생이시여, 봉준호 감독만큼 귀에 쏙 들어오는 대사 쓸 자신 있는가. 또는 장금이만큼 매력적인 캐릭터를 알고 있는가. 젊은 소설가여, 당신한테 절실한 문제, 제발 그것 좀 쓰지 마라. 별로 안 듣고 싶다, 플리즈. 나한테, 그리고 그들한테 절실한 문제를 써 다오. 당신의 독자는 누군가. (인터넷 등을 통해) 그렇게 직접 이야기를 쓰고 무지막지하게 많은 정보를 읽어대며, 영상을 통해 온갖 이야기에 달통해 있는 독자들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거기다 인문사회 서적마저 90년대 이후 위력을 더해 이제 소설은 교양수단으로도 설 자리가 없다.
1930년대에 정립된 ‘본격/대중’ 이분법은 이제 무의식에서라도 잊어버려야 한다. 이제 비평가의 기준은 다시 정해져야 한다. 아무도 안 읽는데 자기 혼자 비평정신 확립하면 뭐하나.
지난해 ‘귀여니 소설’이 보인 파장을 참조해 보라. 소설가들은 당장 홈페이지부터 예쁘게 만들어야겠다. ‘네이버’나 ‘다음’에 자기 소설을 링크시키도록 해봐야겠다.
소설은 ‘소설’이란 푯말이 희미해서 안 보일 정도로 넓어져야 한다. 맛 좋고 영양가 높은 새로운 글쓰기의 이름이 ‘소설’이 아니면 어떤가. (전통소설 작법 속의) ‘인물 사건 배경 시간’이 좀 덜하면 어떤가. 지난해 (엉뚱한) 작가 박민규가 밝힌 것처럼 ‘무(無)규칙 이종(異種)’ 작가는 더 많아져야만 한다.권기태기자 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