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주년을 앞둔 부부가 진료실을 찾아왔다. 결혼한 뒤 갈등이 생겨 극복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남편은 조종사였고 아내는 간호사였다. 서로 근무시간이 달라 함께 시간을 보낼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나 오랜만에 함께 있으면 오히려 다투다가 등을 돌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남편은 해외에서 돌아왔을 때 어질러진 집안 풍경을 보고 기분이 상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밀린 설거지나 청소를 하며 아내를 기다렸다. 그런데 자꾸 그러다 보니 혹시 아내가 자신이 올 때를 기다려 일부러 일감을 남기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불쾌했다.
그러나 아내라고 사정이 없는 게 아니었다. 교대근무 때문에 일정한 생활리듬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아내의 사회생활은 남편이 바라는 점이기도 했다. 남편이 집에 없는 날이 많은데 굳이 집을 지켜야 할 이유도 없었다. 욕심이 많아 이것저것 배우느라 집안살림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는 못했다.
아내는 늘 남편에게 미안하며 감사하고 사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남편이 돌아오는 날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남편이 마치 살림해 줄 사람을 원해 결혼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가족력을 조사했다. 남편의 어머니는 전업주부로 약간의 결벽증이 있었다. 남편은 어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편안하고 구김없어 보이는 부인에게 이끌렸던 것이다.
또 아내가 직업이 있으면 남편에게 지나친 요구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아내는 남녀차별이 없는 가정에서 자랐다. 간호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도 여자라서 무시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조종사란 직업이 신사적일 것이란 판단에 남편을 택했다.
현실은 어땠을까. 남편은 자신이 싫어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어느새 아내에게 기대하고 있었다. 아내는 직장에서 남녀차별을 겪으면서 쌓였던 분노를 남편에게 보상받으려 했다. 다행히 이들은 자신도 모르고 있었던 무의식적 분노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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