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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스포츠카페]청소년때 우상 강현숙씨 만나 이순철 감독

입력 | 2004-05-09 18:04:00

30년전 까까머리였던 프로야구 LG의 이순철 감독(오른쪽)은 당시 여자농구 스타 강현숙씨(왼쪽)를 한번 만나보는 게 소원이었다. 그 바램이 드디어 이뤄졌다. 잠실구장에서 만난 두 사람은 첫 만남이었지만 오래 알던 사이처럼 이야기의 꽃을 피웠다. 전영한기자


70년대 중반 한창 감수성이 예민했던 까까머리 중학시절. 소년은 한 여자농구선수의 열렬한 팬이었다. 운동선수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백옥같이 흰 피부에 언제 보아도 단정한 단발머리. 소년은 그가 출전하는 경기는 빼놓지 않고 봤다.

소년은 당시로선 흔치 않았을 그 선수의 전신 브로마이드 사진을 어렵사리 구해 비닐로 정성스레 코팅을 했다. 그리곤 앨범의 맨 첫 페이지에 끼워 넣었다.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 2004년. 소년은 국내에선 8명밖에 없는 프로야구단의 사령탑이 됐다. 소년의 사춘기를 온통 점령했던 그 여자농구선수도 어느새 큰 딸이 시집을 갈 나이가 됐다.

하위 팀 LG 트윈스를 데뷔 첫해에 2위로 끌어올린 이순철 신임 감독(43)과 미녀 농구스타 출신인 강현숙씨(49·여자프로농구연맹 이사 겸 경기감독관). 두 스타가 첫 만남의 시간을 갖게 되기까지는 꼬박 30년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

이 감독이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하자 강씨는 기꺼이 응했다. 6일 잠실야구장으로 기자와 같이 가는 차 안에서 강씨는 가벼운 흥분마저 느끼는 것 같았다.

“우리 둘째와 셋째가 쌍둥이 딸이잖아요. 그래서 그 동안 LG를 응원했어요. 그런데 이 감독님이 저를 만나고 싶다니까 더욱 관심이 가는 거 있죠. 그때부터 LG 경기를 쭉 지켜봤는데 하필이면 서울 라이벌인 두산에 2연패를 해서 걱정이 되네요. 너무 떨려요.”

그러나 밝은 성격의 강씨는 정작 이 감독을 만나자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대화를 주도했다. 오히려 ‘카리스마의 화신’이라는 이 감독이 화들짝 놀라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느라 수선을 피웠다. 만남의 자리에서 얼굴을 붉힌 쪽도 이 감독이었다.

“반가워요, 감독님. 운동을 그만둔 지 벌써 25년이 됐는데 아직도 절 기억하고 만나고 싶어하는 분이 있다니, 바로 이런 게 살아가는 행복인 것 같아요.”

“제가 간직하고 있는 사진의 모습이랑 하나도 변한 게 없네요. 많이 변했을 거라 생각했어요.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 뭔지 궁금해요. 그런데 너무 일찍 은퇴하셨어요.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결혼하신다는 소식을 듣고는 얼마나 서운했던지. 어쨌든 영광입니다.”

막상 말문이 열리자 30년간 가슴에 묻어두기만 했던 이 감독의 사연이 속사포처럼 쏟아져 나왔다.

“초등학교 때는 안 해본 게 없었어요. 육상, 축구, 핸드볼 등등. 그런데 학교 사정이 어려워 제가 하는 운동 팀마다 해체되는 바람에 5학년 때 마지막으로 야구를 시작했죠. 강 선생님을 알고 난 뒤부터는 야구는 뒷전이고 농구 마니아가 됐어요. 요즘도 농구는 NBA(미국프로농구)는 물론이고 국내 농구까지 다 봐요.”

실제로 만능 스포츠맨인 이 감독은 농구 실력도 수준급이다. 연세대 시절에는 2년 선배인 고 김현준 전 삼성전자 감독대행과 1대1 농구를 즐겼다. 30점내기에서 29점을 접어주는 게임이었지만 ‘전자슈터’로 불렸던 김현준씨와 맞대결을 할 정도라면 이미 아마추어 수준은 훌쩍 뛰어넘었다는 평가.

그래서일까. 화제는 자연스럽게 농구로 옮겨갔다.

“저는 올해 금호생명을 지켜보면서 많은 걸 배웠어요. 만년 꼴찌 팀이 일약 우승을 했잖아요. 강 선생님처럼 가드인 김지윤의 역할이 큰 것 같아요. 야구로 치면 1,2번 타자와 같은 게 가드이지요. 야구도 홈런타자만 많아선 팀이 안 돼요.”

“그래요. 사실 이제야 얘기하는 거지만 작년에 저한테도 감독 제의가 있었던 팀이라 아주 관심 있게 지켜봤어요. 어느 스포츠나 마찬가지이만 꼴찌 팀일수록 구단이 더욱 인내하고 기다려줘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선수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죠. 화합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왜 은퇴 후엔 지도자 생활은 하지 않고 사라지셨나요?”

“당시만 해도 여자가 지도자 되기는 어려운 시절이었죠. 아기를 낳고 키우는 재미에 푹 빠졌어요. 한국 여자농구는 제가 없어도 될지 모르겠지만 제가 이룬 가정은 어머니가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앞섰죠.”

강씨의 이 말에 다시 한번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짓는 이 감독. 그의 얼굴에는 청소년 시절 자신의 우상이었던 옛 스타를 만난 기쁨이 가득했다.

“아주 강한 성격이라고 들었는데 직접 만나 보니 너무 온화해 보이네요. 이럴 게 아니라 우리 자주 만나죠.”

3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이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같은 강씨는 이 감독에게 또 만나자며 악수를 청했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

▼이순철 감독은▼

생년월일=1961년 4월18일

체격=1m73, 78kg

출신교=광주 정람초교-전남중-광주상고-연세대

경력=85년 해태 입단 신인왕, 85,88,91,92,93년 골든글러브, 2001년 올스타전 MVP, 99년 삼성 코치, 2001년 LG 코치, 2004년 LG 감독

통산성적=14년간 타율 0.256 145홈런 1252안타 612타점 768득점 371도루

▼강현숙씨는▼

생년월일=1955년 3월4일

체격=1m72(당시로선 세계 최장신 가드), 몸무게는 비밀

출신교=광희초교-무학여중-무학여고

경력=외환은행, 73년부터 80년까지 8년간 국가대표, 79년 세계선수권대회 사상 첫 2위 주역, 현 여자프로농구연맹 이사, 경기감독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