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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전엔…]동아일보로 본 5월 셋째주

입력 | 2004-05-09 18:52:00

1954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시아경기대회 개회식에 태극기를 앞세우고 입장하는 한국선수단. 한국은 이 대회에서 일본 필리핀에 이어 종합 3위의 성적을 거뒀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八일 亞洲민족 체육祭典 성황리 閉幕-力道는 단연 拔群▼

지난 一일부터 비율빈 마니라 시에서 개최된 제二차 아세아올림픽대회는 九일 하오 五시 폐회식을 거행함으로서 연 九일간에 걸쳐 벌어진 각종경기대회는 종막을 내렸다.

그런데 금번 대회에는 아세아에 있는 十八개국에서 一천五백여명 선수들이 참가한 가운데 거행되었는데 불우한 환경 속에서 참가한 우리나라 선수들은 배달민족의 감투정신과 조국의 영예를 위하여 유감없이 잘 싸웠다. 더욱이 역도 권투 육상 그리고 축구 농구 등 여러 종목에서 우승 또는 우수한 성적을 올리고 마니라 상공에 감격의 태극기를 높이 휘날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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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날의 승리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금번 대회에 참석하였던 경험을 기초 삼어 선수들의 기술연마에 향상을 기할 것은 물론이거니와 정부나 국민은 금후에 이 나라 체육인에 대한 인식을 더욱 두텁게 하여야 할 것이다.

▼아시아경기 첫 참가 3위▼

우리나라가 처음 참가한 ‘아시아경기대회’가 바로 이 마닐라대회다. 1949년 한국 인도 일본 대만 등 11개국 대표들이 모여 각국의 올림픽위원회(NOC)로 조직되는 아시아경기연맹(AGF)을 창설하고 올림픽이 없는 중간 해에 대회를 개최키로 했다. 1950년 인도 뉴델리에서 첫 대회가 열릴 예정이었으나 각국의 열악한 사정으로 1951년으로 미뤄졌다. 6·25전쟁 중이던 한국은 여기에 참가하지 못했다.

18개국이 참가한 마닐라대회에 한국은 6개 종목 57명의 선수단을 보내 금 8, 은 6, 동메달 5개로 종합순위 3위를 차지했다. 1위는 금 38, 은 36, 동 24개를 얻은 일본, 2위는 필리핀이었다.

요즘 세대에겐 뜬금없는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당시 우리에겐 역도가 관심 종목이었다. 고종구(高宗具·미들급) 김성집(金晟集·라이트헤비급) 선수가 이 대회에서 각각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메달박스’ 역할을 톡톡히 한 것.

역도는 광복 후 우리나라에 첫 올림픽 메달을 선사한 종목이기도 했다.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 당시 28세의 휘문고 체육교사였던 김성집은 추상(그 뒤 폐지) 인상 용상 합계 380kg을 들어올려 동메달을 땄다.

올림픽 첫 메달의 ‘영웅’으로서 태릉선수촌장과 대한체육회 수석부회장을 역임한 김 옹은 “그때는 선수들이 쌀을 가지고 가서 스스로 밥 해먹으며 연습했고 메달 땄다고 나라에서 밥 한번 사주는 일 없었지만 모두 열심히 했다”며 “지금은 비교가 안될 만큼 여건이 좋아졌지만 스포츠맨십은 오히려 퇴색해 가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윤승모기자 ysm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