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 전의 선거구호 “못살겠다 갈아보자”가 떠오른다. 요즘의 ‘개혁’ 바람이란 것도 별거냐 싶다. 요컨대 ‘갈아보자’는 거다.
‘못살겠다’의 절박성도 그때나 지금이나 큰 차이 없어 보인다. 물론 국민소득 100달러 시대와 1만달러 시대의 격세지감이 있고, 절대빈곤과 상대빈곤은 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당장 살기 어렵고, 앞으로도 잘살 희망이 안 잡히는 불행감 불안감은 닮았다.
정치가 무엇이고 정책은 무엇인가. 칼자루 쥔 쪽에선 딴 속셈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들에게 세금 바치는 입장에선 ‘다수 국민이 더 잘 먹고 더 잘살도록’ 해 주는 게 정치요 정책이어야 한다.
▼‘밥 만드는 개혁’이 필요하다▼
그럼 진정한 개혁이란 어떤 것인가. 국민이 잘사는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없애는 게 요체다. 한데 ‘정부 여당이 꺼내는 개혁’이란 걸 보고 있자면 걸림돌을 치우겠다는 건지, 더 만들겠다는 건지 헷갈린다.
실업자 저소득층이 가장 살기 힘들다. 벌이가 안 되는 영세자영업자 소기업도 힘겹다. 오늘은 일자리가 있지만 언제 떨려날지 모르는 근로자도 불안하다. 중산층이 급속하게 무너져 국민 10명 중 8명이 ‘살림이 어렵다’고 하는 상황이다.
이러니 소비가 안 늘고, 내수 투자가 위축되고, 일자리가 사라지는 악순환이다. 그래서 수출에 목을 걸지만 중국쇼크다, 고유가다, 원자재난이다 해서 이나마도 적신호다. 그래서 투자 촉진과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 당면과제다. 이게 돼야 악화된 분배가 개선되고 소비가 살아난다. 총선 후 여야 대표가 민생우선 경제우선의 정치를 하겠다고 협약까지 맺은 것도 이 때문이다. 여당 의장이 경제단체장들을 일부러 만나 티끌만한 의구심도 버려달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뭔가.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과 이정우 대통령정책기획위원장은 대기업그룹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노조의 경영권 분점을 후원한다. 이들은 대기업에 대한 출자규제, 의결권 축소, 계좌추적권 재도입이 투자위축 요인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 노조의 소유 및 자본참여가 기업 경쟁력을 오히려 높일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기업들이 규제에 진저리치고 경영권 위협까지 느껴 국내투자에 등 돌리는 엄연한 현실 앞에서 두 위원장의 논리는 공론(空論)일 뿐이다. 이익을 좇는 기업에 투자여건을 따지지 말고 애국심으로 투자하라고 한들 통할 리 없다. 그리고 이들이 투자를 기피할수록 더 많은 국민이 더 잘살게 되는 길은 멀어진다. 두 위원장이 투자할 능력은 없을 테고.
강 위원장, 이 위원장이 이헌재 경제부총리의 조정도 받지 않고 이 부총리가 반대한 정책을 멋대로 내놓은 것도 큰 문제다. 정책결정 시스템이 이렇게 중구난방이니 국내외 투자자들이 경제 불확실성에 심한 불안을 느껴 투자를 꺼리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첫해인 지난해 국내기업 설비투자는 8년 전 수준으로 후퇴했다. 30대 그룹의 올 1분기 투자실적은 계획의 16%인 7조에 그쳤다.
이런 현실이 바뀌도록 정치서비스, 정책서비스를 늘리는 것이 개혁이라고 본다. 자신과 조직의 존재 이유를 확인시키기 위한 개입과 갈아엎기를 개혁으로 포장해선 안 된다. 철 지난 이념으로 비판세력 죽이기나 하려는 것은 개혁이 아니라 권력남용이다. 이는 ‘다수 국민을 잘 먹고 잘살도록 해 주는’ 진정한 개혁과는 거리가 멀다.
▼“못살겠다 갈아보자” 자초 말아야▼
더 많은 국민에게 희망을 주려면 이런 개혁부터 해야 한다. 지극히 후진적인 규제지옥 개혁, 정치서비스의 생산성 개혁, 국민을 힘들게 하는 권력남용 개혁, 정부서비스의 생산성 개혁, 책임 안 지는 행정관행 개혁,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낙후된 노동분야 개혁, 국제경쟁력 있는 인재를 못 기르는 저급교육 개혁, 탁상공론 개혁 등이다.
정부 여당이 이런 개혁엔 손놓고 인기정치 이념정치에만 매몰돼 있으면 이 나라는 장래에 먹고 살 것을 만들지 못하고 그나마 조금 남은 거 갈라먹고 끝내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반세기 전의 선거구호 “못살겠다 갈아보자”가 3, 4년 뒤에 부활할지 모른다.
배인준 수석논설위원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