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국제유가 급등, 중국 쇼크, 미국 금리인상 가능성 등 한국 경제를 둘러싼 외부여건이 한꺼번에 나빠지는 가운데 내부적으로도 주요 경제현안을 둘러싼 경제정책의 불확실성이 ‘위기’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성장 우선’으로 가닥을 잡았던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가 총선 이후 다시 바뀌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면서 투자주체인 기업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10일 서울 증시의 ‘블랙 먼데이’ 등 주가와 원화가치 채권값의 동반하락(트리플 약세)도 심상치 않은 조짐이다. 한국 경제의 ‘현주소’는 어디에 있는지, 또 이 같은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3회에 걸쳐 긴급 점검한다.》
한국 경제에 '빨간 불'이 켜졌다. 체감(體感)경기를 좌우하는 소비와 투자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으면서 서민들은 "경기가 너무 나빠 못 살겠다"며 하소연하고 있다.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이 치솟는 등 금융시장 동향도 심상치 않다.
이처럼 한국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는 것은 수출과 내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 가계부채 급증에 따른 잠재구매력 감소와 같은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점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경제 요인' 외에도 정치권 및 정부 일각의 '반(反)시장경제적' 움직임, 부처간 정책혼선 등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흔들리는 경제정책 리더십=이헌재 (李憲宰) 경제부총리는 대우종합기계 매각 과정에서 나타난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하는 회사인수 움직임에 대해 7일 "입찰참여는 허용하지만 (노조에) 특혜도 차별대우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는 청와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공적자금 투입 회사 매각시 '노조배려' 움직임에 대해 시장경제 원칙을 내세워 "그럴 수는 없다"며 쐐기를 박은 발언.
그러나 청와대 이정우(李廷雨)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은 같은 날 열린 경제장관간담회에 앞서 "대우종합기계 지분매각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가 우리사주조합을 통해 지분을 인수하려는 것은 개인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본다"며 다른 목소리를 냈다.
실제로 대우종합기계 매각업무를 맡고 있는 한국자산관리공사와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최근 청와대 측의 '노조배려' 입장을 존중, 공대위에 입찰자격을 주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이에 따라 인수희망의사를 표명했던 기업들은 상당히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분위기'가 바뀌면서 일부 회사는 공대위와 컨소시엄 구성을 고려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커지는 부처간 불협화음=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금융계열사 의결권 한도를 현행 30%에서 15%로 축소 △출자총액제한제 유지 △계좌추적권을 다시 도입 등을 뼈대로 하는 공정거래법개정안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재정경제부는 "아직 부처간 협의가 끝나지 않았다"며 우회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재경부는 특히 금융계열사 의결권 한도 축소 방안에 대해 적어도 일정기간 유예기간을 주고 의결권 축소폭을 좀 더 줄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反)시장 분위기' 확산 가능성=총선 전까지만 해도 정부는 '창업가 정신'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주력했다. 이헌재 부총리는 집무실에 '기업부민(起業富民·기업을 일으켜 국민을 부유하게 한다)'이라는 액자를 걸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총선 이후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를 확보하고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입하면서 '분배'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열린우리당과 청와대를 중심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러면서 경제팀 수장(首長)인 이헌재 부총리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연세대 이두원(李斗遠·경제학) 교수는 "그동안 각종 경제지표들이 회생 기미를 보였다가 일부 지표가 다시 악화되고 있다"며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시장친화적인 경제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익대 김종석(金鍾奭·경제학) 교수도 "총선 이후 한쪽 목소리가 지나치게 많이 나오면서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가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이라며 "현 상황에서 굳이 기업활동을 위축시켜가면서까지 새 규제를 내놓는 게 타당한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현 상황을 보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시각도 눈여겨볼 부분이 있다. 한 증권회사의 뉴욕지점장은 "한국 증시 하락폭이 더욱 컸던 것은 글로벌 투자자들이 최근 한국 정치권을 중심으로 반(反)시장적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고기정기자 koh@donga.com
▼차이나쇼크-유가급등 이어 美금리 인상說▼
10일 아시아 증시가 미국의 금리 인상 우려와 유가 급등 등으로 인해 일제히 폭락했다. 이날 일본 닛케이평균주가는 지난 주말보다 4.84% 하락한 10,884.70엔으로 마감돼 2월 26일 이후 처음으로 11,000엔선 밑으로 떨어졌다.-도쿄=로이터
한국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대외 경제 환경도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우선 국제 유가가 약 1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아 원유 수입국인 한국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의 경제 긴축 발언에 따른 ‘중국 쇼크’와 미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도 국내 산업계와 금융시장을 요동치게 하는 등 ‘3대 외부 악재(惡材)’가 한국경제를 옥죄고 있다.
▽3차 오일쇼크 가능성도=이달 7일 뉴욕시장에서 미국 시장의 기준유인 서부텍사스중질유(WTI) 가격이 걸프전 직후인 1990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장중 한때 배럴당 40달러를 넘어섰다가 39.98달러로 장을 마쳤다. 또 중동산 두바이유는 최근 배럴당 35달러에 육박해 역시 14년 만의 최고치로 뛰어올랐다.
국제 석유전문가들은 유가가 중동지역의 테러 확산과 미국의 가솔린 공급 부족으로 인해 당분간 더 상승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국내 전문가들도 10일 산업자원부 후원으로 경기 안양시 한국석유공사 회의실에서 열린 국제석유시장 전문가 협의회에서 지금과 같은 고유가 추세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석유공사 구자권(具滋權) 해외조사팀장은 “중동의 정정(政情)이 단기간에 안정된다면 유가가 두바이유 기준 26∼28달러 수준으로 떨어지겠지만 그 가능성이 크지 않아 하반기에도 30∼35달러 선의 높은 수준에 머물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쇼크는…=전문가들은 중국 당국이 향후 과잉투자에 국한된 대출억제와 금리인상 등의 조치를 단계별로 취한 뒤 아직은 가능성이 높지 않지만 위안화 평가절상 카드까지도 고려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중국이 1단계 대책인 과잉투자 부문에 대한 대출억제를 통해 경기 연착륙에 성공할 경우 한국은 대(對)중국 수출이 어느 정도 줄어들겠지만 ‘중국 쇼크’라는 불확실성의 해소와 국제 원자재 가격 하락 등의 긍정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지난해 말부터 대출 억제를 통한 긴축을 시도했는데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2단계 조치인 금리 인상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럴 경우 기업도산 증가, 금융부실 증가, 성장률 하락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한국으로서는 중국에 대한 수출 감소는 물론 올해 목표로 잡고 있는 5%대 성장도 위협받을 수 있다.
한국은행은 중국 경제가 연착륙에 실패하면 한국의 대중국 수출액은 연간 50억달러 줄어들고 경제성장률은 0.3%포인트가 떨어질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정문건(丁文建) 전무는 “중국의 투자억제로 경제성장률이 올 1·4분기(1∼3월) 9.7%에서 7%대로 내려앉을 경우 한국은 올해 5%의 성장률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높아지는 미국 금리 인상 가능성=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이달 4일 정책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가진 다음 발표한 성명서에 단골 문구인 ‘미국 경제에 디플레이션 위험이 있다’는 부분을 포함시키지 않아 인플레 방지를 위해 금리 인상을 준비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 금리가 오르면 미국 기업들의 자금 부담이 커지면서 미국 증시를 침체시킬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미국 증시의 영향을 많이 받는 국내 증시도 동반 침체 현상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또 미국 소비자들의 금리 부담을 높여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면 한국의 대미(對美) 수출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경제연구소 황인성(黃仁星) 수석연구원은 “3대 악재는 세계 모든 국가에 적용되는 악재지만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더 큰 충격을 받고 있는 것은 최근 우리 경제가 내수 침체 속에서 수출에만 의존하는 기형적 구조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송진흡기자 jinhup@donga.com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고기정기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