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는 불펜으로 자리를 옮겨야 하는 것인가?
10일(한국 시간) 메이저리그의 최대 이슈는 단연 박찬호의 불펜 합류다. 선발로만 6경기에 등판했던 투수가 덕아웃이 아닌 불펜에서 대기했기 때문에 박찬호가 불펜으로 밀려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여기저기서 나돌고 있다. 게다가 콜비 루이스의 복귀 임박, 계속된 일정 변경 등 여러 가지 악조건이 생겨나고 있어 이러한 의문은 점점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그렇지만, 10일 오후에 있었던 박찬호와의 전화 통화 결과 불펜 대기는 일시적인 현상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처럼 10일 경기에서 불펜으로 자리를 옮긴 것은 난타전이 펼쳐졌던 9일 경기가 결정적인 이유였다는 사실도 함께 드러났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시즌 초반 예상외로 선전하고 있는 텍사스는 9일 열린 디트로이트와의 경기에 무려 6명의 불펜 투수를 기용했다. 8일 경기에 5명의 불펜 투수가 마운드에 오른 상항에서 또 다시 6명의 불펜 투수를 투입했다는 것은 불펜진의 사용이 정점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텍사스는 10일 경기에 불펜의 소모를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선발 케니 로저스에게 최대한 많은 이닝을 맡기는 것이 첫 번째 방법이었고, 로저스가 조기 강판될 경우 선발 투수를 롱릴리프로 활용한다는 것이 두 번째 대안이었다. 그리고, 롱릴리프를 맡을 투수로는 라이언 드리스와 박찬호가 내정된 상태였다. 실제로 드리스와 박찬호는 이날 경기를 불펜에서 지켜봤다.
그렇지만, 두 선수의 투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선발 케니 로저스가 코칭 스태프의 기대대로 많은 이닝(7 2/3이닝)을 소화했고, 9일 경기에 등판하지 않았던 넬슨이 남은 이닝(1 1/3)을 책임지며 두 명의 투수로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드리스와 박찬호, 두 선발 투수를 불펜에 대기 시킨 것은 11일 경기가 휴식일인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투구를 하지 않거나 적은 이닝을 소화한다면 휴식 후 다시 선발 등판이 가능, 많은 이닝을 투구할 상황이었다면 한 선수를 전격 투입하고, 다른 한 선수는 12일 경기에 선발 등판하는 마운드 운영을 시도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투수는 3일밖에 휴식을 취하지 못한 드리스가 아닌 박찬호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불펜에서 대기를 한 것에서 대해 박찬호는 전혀 개의치 않은 분위기였다. “팀 사정상 당연한 조치였고, 드리스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라고 말하며 자신보다 팀 성적이 우선임을 강조했다. 아울러 “지난 번에도 이야기했듯이 전체적인 분위기와 몸 컨디션은 좋은 상태이며 올해는 뛰어난 성적보다는 예전처럼 건강한 몸으로 자신 있게 투구할 수 있는 재기의 해로 만들고 싶다. 2년의 공백을 찾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욱 더 필요하며 어떠한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끝까지 지켜봐 달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10일 경기에 등판하지 않은 박찬호는 13일 경기에 선발로 나설 것이다. 텍사스는 5월부터 드리스-베노아-디키-로저스-박찬호의 순서로 이어지는 로테이션을 사용하고 있다. 때문에 12일 경기가 박찬호의 정상적인 등판 날짜가 된다. 그렇지만, 텍사스는 최상의 투구 감각을 유지하고 있고, 투구 간격이 줄어들수록 더욱 효과적인 피칭을 하는 드리스를 먼저 투입할 예정이다.
불규칙한 일정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는 박찬호로서는 8일만의 등판이라는 또 다른 복병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이 역시 성적 부진이 초래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계속해서 팀의 1, 2선발다운 빼어난 투구 내용을 보여주었다면 텍사스의 코칭 스태프 역시 박찬호의 등판 간격을 계속해서 지켜주었을 것이다.
프로는 성적으로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성적이 뒷받침 되지 않는 이상 박찬호의 힘든 여정은 계속해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서두를 필요는 없다. 박찬호는 현재 가장 어려운 난관에 처해있으며 그 곳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판을 계속해서 마련하고 있다. 높이 날 수 있는 튼튼한 발판이 갖춰진 다음 비상해도 늦지 않다. 괜한 서두름은 어렵게 참아온 지난 날을 그르칠 수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고난을 극복한 후에야 맛볼 수 있는 진한 감동과 승리의 쾌감. 박찬호에게도 시나브로 다가오고 있지 않을까?
임동훈 동아닷컴 스포츠리포터 arod7@mlbpar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