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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새벽의 저주’… 좀비는 무엇에 약할까

입력 | 2004-05-11 17:38:00


14일 개봉예정인 ‘새벽의 저주(Dawn of the dead·사진)’는 조지 로메로 감독의 이른바 ‘시체 3부작’ 중 두 번째인 ‘시체들의 새벽’을 리메이크한 영화다. 조지 로메로 감독은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 ‘시체들의 새벽’(1979) ‘시체들의 낮’(1985)을 통해 서로를 잡아먹는 가족, 혹은 쇼핑몰을 근거지로 되살아난 시체들인 좀비와 잔혹한 싸움을 벌이는(혹은 즐기는) 인간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며 핵가족 제도와 소비자본주의를 불안한 시선으로 읽어냈다.

‘새벽의 저주’는 그러나 원작의 좀비 상징과는 다른 지점에 서 있다. 나이키, 리복 등의 TV 광고를 만든 잭 스나이더 감독은 강력한 비트의 록 음악을 곁들여 끔찍하고 경쾌한 ‘호러 엔터테인먼트’로 새롭게 판을 짠다. 관심은 ‘좀비의 정체성’이라는 ‘무엇(What)’이 아닌, ‘좀비를 어떻게 퇴치할 것인가’라는 ‘어떻게(How)’에 있다.

어느 날 새벽, 간호사 안나는 남편이 옆집 소녀에게 물어뜯기는 장면을 목격한다. 끔찍한 얼굴로 되살아난 남편을 피해 안나는 집밖으로 도망친다. 도시는 이미 좀비들로 뒤덮였다. 안나는 살아남은 몇몇 사람들과 함께 쇼핑몰 안으로 피신한다. 거기서도 궁지에 몰린 안나 일행은 쇼핑몰 탈출을 감행한다.

좀비는 이 영화에서 뱀파이어나 늑대인간을 대신하는 대안적 괴물에 불과하다. 무뇌아(無腦兒)처럼 흐느적거리며 다가오는 ‘고전적’ 모습을 벗어나, 좀비는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를 따라잡을 정도로 힘이 넘친다. 인간이 쏜 총알에 좀비의 머리통이 산산조각 나는 장면은 세련된 연출에 힘입어 끔찍하기보다 군더더기 없고 속 시원한 쪽에 가깝다.

좀비 영화에서 소재는 빌어 왔지만, 이 영화를 끌고 가는 것은 할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의 문법이다. 초반부터 좀비로 마을을 가득 메우는, 엄청난 규모의 스펙터클로 판을 확 키운 이 영화는 이후 다양한 방법으로 좀비를 훼손하는 각종 창의적(?) 아이디어로 인간의 공격본능을 변주한다.

귀신을 ‘귀신’이라고 부르는 순간 무서움의 절반은 달아나버리기 때문일까. 이 좀비 영화에 정작 ‘좀비’란 단어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그저 ‘그것’으로만 지칭될 뿐. 18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