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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송문홍/서울광장

입력 | 2004-05-11 18:54:00


“시청 앞 광장을 보행자 위주의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는 좋지만 잔디광장은 아닙니다.”(인터넷 ID ‘시청앞’) “광장에 잔디를 심으면 많은 사람이 이용하지 못한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인데, 혹시 집회 규제를 위해 의도적으로 잔디를 깐 건 아닌지?”(GOWOONET) “광장의 현재 모습은 탁상 행정, 편의 행정의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조○○) 서울시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시민 의견들이다. 개장한 지 12일밖에 안 된 시청 앞 서울광장의 잔디를 놓고 논란이 많다.

▷서울시청 앞을 광장으로 바꾼다는 계획은 2002년에 이미 결정됐다. 그해 6월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이명박 시장이 공약으로 내걸었고, 3차에 걸친 여론조사에서도 찬성 의견이 80% 가까이 나왔다. 2003년 1월 서울시는 광장 조성에 대한 현상 공모를 했다. 여기서 뽑힌 당선작 ‘빛의 광장’은 광장 바닥에 LCD 모니터 2003개를 설치해 야간에 빛의 축제를 연출한다는 ‘혁신적인’ 구상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당선작은 기술 보완 등을 이유로 장기 검토 과제로 남겨졌고, 서울시는 올 3월부터 두 달간 공사를 벌여 지금의 잔디광장을 탄생시켰다.

▷개장 열흘 만에 100만명 가까운 시민이 서울광장을 찾았다고 한다. 삭막한 도심에서 숨통을 틔게 해주는 개방 공간에 대한 기대감이 그만큼 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부작용은 금방 나타났다. 예전보다 더 나빠진 주변 교통 정체와 심각한 잔디 훼손이 그것이다. 급기야 엊그제 서울시는 잔디 보호를 위해 매주 월요일 광장 출입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일주일 중 하루는 광장의 주인이 시민에서 잔디로 바뀌게 된 셈이다. 그러나 하루를 쉰다고 잔디가 제대로 살 수 있을까.

▷지금의 서울광장은 서울시 건설본부의 설계에 따른 것이다. 잔디를 깐다는 발상도 공무원들 머릿속에서 나왔다. 그 결정을 하기 전에 한 번이라도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쳤어야 했다. 모처럼 시민의 박수를 받을 만한 일을 했다가 사실상 ‘실패작’을 낸 격이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진행 중인 청계천 복원사업에서는 이번과 같은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바란다. ‘빨리빨리’의 전시행정시대는 지났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