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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철칼럼]‘탄핵 대통령’ 그 이후

입력 | 2004-05-12 18:54:00


노무현 대통령이 다시 심판대에 선다. 대통령 탄핵에 대한 헌법재판소 최종결정이 내일로 예정돼 있기도 하지만 앞날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헌재 발표를 생중계하고,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문을 준비한다는 정황을 보면 헌재 결정은 국회탄핵을 받아들이지 않는 쪽인 것 같다. 헌재 결정에 토를 달 생각은 없지만, 4·15총선까지 휘몰아쳤던 탄핵반대 시위의 위력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당초 국회의 탄핵이유는 무엇이었는가. 따지고 보면 대통령 리더십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코드정치’로 요약되는 국정운영을 믿지 못하겠다는 야권의 정치적 응징 아니겠는가. 탄핵에 찬성한 국회의원 재적 3분의 2 이상은 여간해서는 모이기가 어려운 숫자다. 그럼에도 헌재 결정이 대통령직을 계속하라는 내용으로 결론이 난다면, 나는 그것을 정치적 신뢰를 회복하라는 주문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앞으로는 정치를 잘 하라’는 뜻일 것이다. 이제 대통령은 신뢰의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심판대라 한 것도 바로 신뢰의 심판대라는 의미다.

▼신뢰회복의 심판대▼

신뢰회복은 국회탄핵을 대통령이 어떻게 소화하느냐에서 시작된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부패한 정치권이 어떻게 끌어내릴 수 있단 말인가. 여론의 70% 이상이 반대했던 탄핵 아닌가. 쿠데타식 방법으로 탄핵당하긴 했지만 아직도 승복할 수 없다는 등의 억한 심정이라면 신뢰고 뭐고 이야기할 것도 없다. 잠시 뒤돌아보자. 탄핵에 찬성했던 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은 총선에서 혼쭐났거나 초토화됐지만 정당득표율은 탄핵을 반대한 열린우리당의 38.3%에 비해 야 3당의 합계가 45.7%로 더 높았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여론이 갖는 ‘천의 얼굴’이요, 그 속엔 탄핵찬성 민의도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화만 낼 일인가.

헌재 결정이 난다고 해서 ‘탄핵대통령’이란 꼬리표가 저절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두 달간 대통령 직무정지가 없었던 일로 되는 것도 아니다. ‘탄핵감점’이 회복된 것은 더욱 아니다. 그것은 분명히 대통령에 대한 합법적인 벌이다. 바로 여기에서 대통령의 신뢰회복 노력도 출발해야 한다. ‘나보고 왜 불안하다고 하느냐’고 묻지 말고 남들이 불안감을 느끼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라. 신뢰를 쌓아야 할 부분도 바로 그곳이다. 집권세력이 모습을 갖췄으니 전처럼 ‘발목 잡는다’고 남의 탓만 할 수도 없다.

내정 못지않게 만만치 않은 과제가 외교부문에도 있다. ‘탄핵대통령’이란 꼬리표가 앞으로 외교관계에 미칠 영향을 극복하는 일이 쉽지 않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하면서도 속으로는 별의별 계산을 다하는 것이 국가간 외교의 속성이다. 여기서도 신뢰가 손상됐다면 회복하는 일뿐이다. 묘수가 없다. 그런 뜻에서 이라크 추가파병은 외교적 신뢰의 중요한 시험대다. 이런 가운데 지금 대통령은 급변한 정치환경 속에서 만만치 않은 도전을 받고 있다. 총선결과로 여권의 외형적 위치는 높아졌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개혁을 외쳐온 대통령이 아이로니컬하게 그 ‘개혁 부메랑’을 맞고 있는 형국이다.

▼‘개혁 부메랑’의 도전▼

민주노동당의 등장으로 외곽의 대통령 지지세력 상당부분이 왼쪽으로 쏠리고 있고, 언젠가는 떨어져 나갈지 모른다는 것이다. 당의 진로를 놓고 우리당내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친노좌파, 친노직계, 친노우파로 나뉘는가 하면, 비판적 지지파와 감성적 지지파로도 구분된다. 도대체 몇 층 밥인지 모를 지경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총선 후엔 대통령의 정치적 리더십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이 현실정치의 경험이다. 여기에다 잠복한 차기 대권경쟁이 맞물리면 권력갈등은 더욱 복잡해진다. 당분간은 내부에서 ‘탄핵대통령’이란 말이 나오지 않겠지만 1년 후쯤엔 사정이 달라져 공공연히 거론하는 상황이 오리라는 전망도 있다. 대야관계도 당장은 상생정치를 강조하고 있지만 언제 대결구도로 치달을지 모른다. 후임 총리내정설을 비롯해 벌써부터 곳곳에서 마찰음이 들린다. 대통령의 탄핵 이후 심판대가 매우 어지러운 이유다.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