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산이 되기 위하여
- 이근배
어느 날 문득
서울 사람들의 저자거리에서
헤매고 있는 나를 보았을 때
산이 내 곁에 없는 것을 알았다
낮도깨비같이 덜그럭거리며
쓰레기더미를 뒤적이며
사랑 따위를 팔고 있는 동안
산이 떠나버린 것을 몰랐다
내가 술을 마시면
같이 비틀거리고
내가 누우면 따라서 눕던
늘 내가 되어 주던
산을 나는 잃어버렸다
내가 들르는 술집 어디
만나던 여자의 살냄새 어디
두리번거리고 찾아도
산은 보이지 않았다
아주 산이 가버린 것을 알았을 때
나는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내가 산이 되기 위하여
- 시집 ‘사람들이 새가 되고 싶은 까닭을 안다’(문학세계사) 중에서
공자가 이르기를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고 했다. 또 ‘지혜로운 자는 움직이고 어진 자는 고요하며, 지혜로운 자는 즐기고 어진 자는 오래 산다’ 했다.
높고 어려운 경지이긴 하나 산과 물을 좋아하는 것이 현자(賢者)에 한하겠는가? 이름 없는 범부라도 자기 마음 속 심처에 흰눈을 얹은 영산(靈山) 하나쯤 가지고 있을 터. 저마다 그 힘으로 사는 게 틀림없다. 그 영산 발꿈치께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도 하나쯤 없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는 그 영산을 잊고 산다. 자잘한 일상에 묻혀 근시가 되어가다 마침내 저 산을 아주 놓치게 된다면, 두려운 일이다. 그 산과 내가 둘이겠는가. ‘내가 산이 되기 위하여’ 끊임없이 내 안의 영산을 올라야 할 것이다.
반칠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