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 분당 율동공원 뒤편의 농장에서 김관양 교사(오른쪽)와 제자들이 브로콜리 모종을 심으며 즐거워하고 있다. 성남=이재명기자
경기 성남시 분당신도시 율동공원 뒤편에는 도심 속의 작은 농장이 있다.
13일 이 농장에는 수확을 기다리는 파릇파릇한 상추가 가득했다. 한쪽에는 이식을 앞둔 브로콜리 모종이 있었고 비닐하우스 안에선 엄지손가락만한 파란 토마토가 자라고 있었다.
“상추를 따다 내일 아파트 단지로 가져가서 팔자.”
지도교사인 김대근씨(38)의 말에 사람들이 하나둘 상추밭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뇌성마비인 이훈희씨(22)와 정신지체1급인 박연옥씨(23·여), 자폐증을 앓고 있는 정남혁씨(23) 등 모두 발달장애인.
이 농장의 이름은 ‘성남발달장애전환교육센터’다. 그러나 교육기관만은 아니다. 이 농장을 만든 성남 수진초교 특수교사인 김관양(金罐良·47)씨와 지도교사 2명, 발달장애인 12명에게 이곳은 엄연한 일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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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지어 작물을 시장에 내다팔고 그 수익금을 나눠 갖는다. 물론 수입이 많지 않아 정부 보조금이 없으면 운영이 힘들지만 김 교사와 발달장애인들은 이곳에 씨앗과 희망을 함께 심고 있다.
김 교사가 센터를 만든 것은 2000년 7월. 1979년 초등학교 교사로 교직을 시작한 김씨는 1990년 특수교사가 됐다. 집 안에만 갇혀 있는 장애아동들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기 위해서다.
성남혜은학교에서 특수교사 생활을 시작한 김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냉혹한 현실을 깨달았다. 아무리 열심히 가르쳐 사회에 내보내도 졸업생 대부분이 또다시 집 안에만 있거나 거리를 배회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들에겐 일터가 필요했다. 김씨는 1995년부터 성남시 도촌동과 율동 등에서 1000여평씩의 땅을 임대했다. 그리고 제자들을 불러 모아 함께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러나 임대료를 내고 나면 수입이 거의 없었다. 2000년 때마침 성남시가 시유지 1100평을 무상 임대해주면서 비로소 센터가 들어설 수 있었다. 사비 수천만원을 털어 비닐하우스를 짓고 농기계를 구입했다. 황무지 같은 땅을 5개월에 걸쳐 제자들과 함께 개간했다.
“발달장애인은 한 가지 일에 높은 집중력을 보입니다. 농사는 이들에게 가장 적합한 일이죠. 더욱이 좋은 환경 속에서 유기농 작물을 재배하면 치료효과도 거둘 수 있습니다.”
최근 김 교사와 제자들은 지금까지 모은 수입과 몇몇 후원자의 지원으로 경기 광주시 초월면에 640여평의 농지를 추가로 구입했다. 제법 농사일을 잘 하는 제자들이 직접 농사를 짓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정부 보조금이 절반으로 줄어든 데다 농지의 임대기간이 다음달이면 끝나 걱정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김 교사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모든 제자들이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돌보고 싶습니다.”
성남=이재명기자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