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
- 오명주
긴 낮잠에서 깨어나
이 방 저 방 둘러봐도 식구들이 없다
골목을 나가 보아도
큰길마저 맑게 정지해 있다
가겟집, 제과점, 세탁소, 그 어디에도
사람은 없다
제과점에서 먹고 싶던 빵 하나를 얼른 집었다가
가만히 내려놓는다
비어 있는 가게마다 문은 활짝 열려 있다
어머니는 어딜 가셨나
돌아보면 아무도 없고
혼자라는 사실에 내가 내 자신에게 놀라서
거리로 뛰쳐나온다
정지한 리어카
길 가운데 비어 있는 차들
도둑 고양이
무서운 개조차 보이지 않는다
텅 빈 길 한 가운데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린다
투명한 오후
- 시집 ‘황태'(현대시) 중에서
‘킬킬 고거 깨소금 맛이다. 떼쟁이, 칭얼쟁이 어지간히 성가시더니 그러게 누가 낮잠 길게 자래?’
저 아이 벌건 낮 울음을 언니 오빠가 훔쳐본다면 아주 잠깐 고소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내 달려나와 덥석 안고 눈물 훔쳐 줄 식구들이 정말 하나도 없는 모양이다. 새끼 쳐 나간 제비집도 고요하고, 바지랑대 끝엔 그 흔한 잠자리도 한 마리 없다. 나를 제외한 백주 대낮의 음모(陰謀)가 여간 불길하지 않다.
제과점 빵을 도로 놓은 건 잘한 일이지만 온전한 윤리의식의 발현일까? 혼자라는 두려움이 입맛을 앗아간 탓도 있을 터. ‘누가 와주었으면…’ 기척을 살피느라 울음이 가늘고 길어진다. 낮잠 뒤 휑한 풍경, 어쩌면 내 유년의 한 풍경을 그대로 옮겨 놓았을까?
사람 사이에 사람이다. 저 아이에게야 곧 엄마 아빠가 돌아오겠지만, 사람이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참으로 외로운 일이다.
반칠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