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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스포츠카페]박세리 라운딩홀서 만난 아버지 박준철씨

입력 | 2004-05-16 17:41:00

딸 박세리(앞)의 퍼팅을 지켜보며 박준철씨(의자에 앉은 사람)는 무슨 생각을 하고있을까. 박세리가 처음 골프채를 잡은 13살때부터 그림자처럼 딸을 따라다닌 그는 오늘의 골프여왕 박세리를 탄생시킨 주인공이다. 용인=권주훈기자


열세 살 때부터 아버지는 딸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운동하고 밥 먹고 쉬는 시간에도 딸 곁엔 아버지가 있었다. 자는 시간에도 딸의 꿈엔 아버지가 나타나 야단을 쳤다.

그 후 14년. 딸은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3년 후면 여자골퍼로는 최고의 영예인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명예의 전당에도 입성하게 된다.

박세리(27·CJ)의 아버지 박준철씨(53). 박세리가 한국을 넘어 세계 정상을 정복하기까지 그 공의 절반은 아버지 몫이었다. 그 아버지를 제2회 MBC XCANVAS 여자오픈골프대회 1라운드가 열린 14일 88CC에서 만나 ‘홀 바이 홀(Hole by Hole) 인터뷰’를 했다.

#1번홀

먼저 명예의 전당 얘기를 꺼냈다. 박씨는 “미 켈럽울트라 오픈이 끝난 뒤 하도 축하전화가 많이 와서 휴대전화를 꺼놨을 정도”라며 웃었다.

그는 “명예의 전당 입성은 7년 전 미국에 갈 때부터 세워 놨던 목표였다. 사람들은 다 안 된다고 했지만 난 가능할 거라고 봤다. 계획대로 착착 진행돼 이뤄진 목표다. 다만 그 시기가 빨라졌을 뿐이다. 35세 이전에 들어가는 걸 목표로 했는데 많이 앞당겨졌다”고 했다.

98년 US오픈 우승과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게 된 이번 미 켈럽울트라 오픈 우승 중에 어느 승리가 더 기뻤느냐고 물어봤다.

박씨는 “US오픈 때가 훨씬 감격적이었다. 워낙 드라마틱한 승부였으니까. 세리가 물 속에 들어가 끝내 이겨내는 걸 보면서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로 고통 받던 국민이 큰 힘을 얻었다고 했다.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소름이 끼칠 정도”라고 말했다.

#4번홀

박세리는 징크스가 있을까. 박씨는 “특별한 징크스는 없는데 계란을 안 먹는다”고 했다. “왜 그러냐”고 묻자 “깨질까봐 그런다. 세리는 깨지는 건 안 먹는다”고 답했다.

회도 잘 안 먹는 음식 중 한 가지. 배탈이 날까봐서란다. 그만큼 박세리는 몸 관리가 철저하다. 대회 기간 중엔 주로 양식으로 식사를 해결한단다.

다른 선수들은 라운드 도중 초콜릿이나 샌드위치 등으로 허기를 채우는데 박세리는 간식을 즐기지 않는 편. 리듬이나 경기 템포가 흐트러질까봐서다.

#8번홀

박세리는 요즘 “예뻐졌다”는 소릴 많이 듣는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에는 쌍꺼풀 수술도 했다. “왜 예뻐졌다는 말이 나오는 것 같으냐”고 묻자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하냐”며 얼굴을 붉혔다.

아버지에게 “언제 결혼시킬 거냐”고 물어봤다. 박씨는 “서른 살 넘으면 한번 생각해 봐야겠다. 지금은 운동에 전념할 때”라고 잘라 말했다.

#9번홀

박씨의 핸디캡은 어떻게 될까. 그는 “요즘 허리도 아프고 몸이 조금 안 좋지만 그래도 70대는 친다. 골프 친 지 한 20년 됐는데 베스트 스코어는 68타”라고 소개했다.

“세리에게 초등학교 6학년 때 골프를 시킨 것도 내가 골프를 워낙 좋아해서였다. 시켜보니까 소질이 있기에 아예 골프선수의 길로 들어가게 했다.”

#10번홀

박세리의 티샷이 흔들렸다. 방향도 안 좋았고 거리도 짧았다. 그린 주위에 있던 박씨는 “쟤가 왜 저러지…. 화장실 갔다 왔나?”라고 한마디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9번홀 끝나고 박세리는 정말 화장실에 들렀다.

박씨는 “세리의 샷만 보고도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을 정도가 됐다”고 했다. 하긴 14년간 딸을 따라다녔으니…. 어떤 생각을 하는지, 왜 흔들리는지 아버지는 딸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14번홀

박세리가 아버지에게서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몇 가지 있다. 박씨는 “‘프로 맞아?’ ‘너 지금 뭐하는 거니?’ 이런 말들을 딸이 가장 싫어한다. 그러나 정신 차리라고 하는 얘기들이다. 자주 하진 않는다. 평상시엔 ‘편하게 하라’고 하지만 가끔 충격을 줘야 할 때가 있다”며 웃었다.

#18번홀

박씨는 “세리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고 했다.

“미국에서 한국선수들끼리, 또는 그 부모들끼리 서로 헐뜯는 일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승을 한 선수와 못 한 선수들도 갈라진다. 세리가 앞장서서 그런 걸 없애야 한다. 이제 목표를 이뤘으니 후배들한테 베풀어야 한다.”

용인=김상수기자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