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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기의 눈높이육아]말늦고 공격적…경미한 자폐증

입력 | 2004-05-16 17:45:00


말 배우기가 더디고 부모와 함께 놀지도 않고 종종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하던 현우는 다섯 살 때 상담소에서 ‘반응성 애착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부모가 아이를 잘 돌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 후 현우는 치료라는 치료는 다 받았다. 아빠 월급의 절반이 치료비로 나갔고, 엄마의 생활은 아이를 학교에서 상담소로, 치료센터로 데리고 다니는 것이 전부가 되었다.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인 현우는 이전보다는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말과 대인관계가 어설프고, 자동차 종류에 집착하고, 집중을 못 한다. 아이가 학교에서 공부도 못 하고 자꾸 따돌림을 받자 엄마는 약을 먹으면 집중력과 사회성이 좋아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소아정신과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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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정확한 진단이 필요했다. ‘반응성 애착장애’란 부모가 아이를 지속적으로 전혀 돌보지 않았거나 양육자가 너무 자주 바뀌었을 때, 혹은 학대했을 때 아이가 정서적 반응의 결여, 한 귀퉁이에 웅크리고 있는 등의 위축된 반응, 엉뚱하거나 기괴한 반응, 또는 공격적인 반응 등을 보이는 질환이다.

언어나 인지능력이 발달될 리 없고, 영양 결핍이나 스트레스 때문에 신체적인 발달도 방해를 받는다.

하지만 현우의 부모는 아이를 돌보지 않거나 학대를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서로 사이가 나빠 아이에게 소홀하거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적도 있지만 애착에 심한 장애를 초래할 수준은 아니었다. 또한 애착이 문제였다면 부모가 그만큼 공을 들였으면 이제는 정상아로 돌아와 있어야 했다.

현우의 병명은 경한 자폐증을 의미하는 ‘아스퍼거 증후군’이었다.

자폐증처럼 비언어적인 의사소통을 잘 못 하고, 타인의 의도를 예측하지 못하며, 집착하거나 반복적인 행동을 하지만 전형적인 자폐증보다는 지능과 언어 발달이 좋아 도움을 받으면 비교적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장애인 것이다. 정확한 진단으로 엄마는 자신의 잘못된 양육에서 문제가 비롯되었다는 깊고 오래된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불행하게도 자폐증을 완전히 낫게 하는 기적의 치료법은 아직 개발되지 못하였지만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특수교육과 적절한 약물치료로 기능의 수준을 현격히 향상시킬 수 있다. 현우도 조금씩 더 좋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난히 반응성 애착장애라는 진단이 많이 나오는 경향이 있다.

자폐증에 대한 거부감, 정상아로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을 붙들고 싶은 부모의 절박한 마음, 그리고 그에 따른 전문가의 애매한 태도 때문이다. 하지만 정확한 진단과 현실적인 기대, 그리고 적절한 치료는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서 불필요한 괴로움을 덜어준다.

소아신경정신과 전문의·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