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료 30% 확충’이라는 대통령 공약의 실천을 놓고 논란이 있다. 공공병원의 병상 비율을 우리나라 총 병상 수의 30%까지 올리고, 1차 의료를 강화하기 위해 도시지역에도 보건지소를 만들어 가정전문의를 배치하겠다는 공약 내용의 현실성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이번 기회에 공공의료의 바람직한 방향을 원점에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공공의료’의 개념부터 논란이 없지 않은 게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공공의료기관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공공의료로 정의하는 듯하다. 하지만 민간의료기관도 정부가 정한 의료수가를 따르고, 진료 명세를 심사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를 민간의료로 치부할 수 있을까.
공공의료 확충의 목적은 의료의 공공성 확보에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험권 내의 민간의료기관들은 공적인 의료를 제공하면서도 ‘영리추구 기업’으로 간주돼 적자가 나면 도움을 받지 못하고 도산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민간의료기관은 적자가 날 것 같은 서비스는 피하게 된다. 정부가 공교육을 담당하는 사립학교를 지원하는 것과 같이, 보험권 내의 민간의료기관에 대해서도 지원해 준다면 이들의 의료서비스 행태가 달라질 것이다. 전체 병상이 남아도는 현실에서 정부는 공공병원의 병상 수 확충보다 민간의료기관을 끌어안는 방법으로 의료의 공공성을 확보하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하지만 민간병원만으로는 공공성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특수전염병(에이즈, 사스 등)이나 난치병의 치료는 재정 사정으로 민간병원이 맡기 어렵다. 바로 여기에 공공병원의 필요성이 있다. 공공병원이 민간병원과 경쟁할 것이 아니라 이런 특수 의료서비스나 질병연구 등의 분야에서 중심 역할을 해야 자원의 중복 투자를 막고 전체적인 의료의 질도 제고할 수 있다.
보건소를 포함한 공공병원이 담당해야 할 중요 분야 중의 하나는 노인들을 위한 요양형 의료서비스다.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화사회에 접어들었다. 만성질환에 대비한 ‘건강증진사업’과 ‘노인 돌봄’ 등 고령화시대의 보건복지서비스를 보건소가 1차적으로 맡아줘야 한다. 선진국들이 1990년대부터 시작한 공중보건의 새로운 형태인 건강증진사업은 생활습관으로 인한 노인성 만성질환을 예방하는 데 필수적인 사업이다. 우리나라도 1995년 건강증진법을 제정하고 건강증진기금을 만들었지만 이 사업은 아직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보건소의 조직과 인력을 전면 개편해 방문간호사와 보건교육사, 운동처방사, 영양사 등의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는 일이 급선무인데 행정자치부가 이런 필요 인력의 확보에 부정적이라 심히 우려된다.
만성질환은 완치가 어렵기 때문에 합병증이 없는 한 병원보다 가정에서의 관리가 중요하므로 ‘방문보건’과 ‘돌봄’ 서비스를 제공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 점에서 도시보건지소를 만들겠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여기에 가정전문의를 배치하겠다는 것은 잘못이다. 의사가 배치되는 순간부터 보건지소는 방문사업보다 일반의원 역할에 치중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규식 연세대 교수·보건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