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관련 자료를 정리하면서 그때의 악몽에 벗어나지 못하고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가장 가슴 아팠다고 회고하는 정수만회장. 그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암매장이나 헬기 기총소사 등 의혹을 꼭 규명하겠다고 다짐했다.》
‘1980년 5월 27일 수요일 맑음,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 시내로 진입(새벽 3시), 도청 주변 완전 포위 금남로에서 시가전(새벽 4시), 계엄군 도청 안에 있던 시민군에게 무차별 사격(새벽 4시10분), 계엄군 도청 등 시내전역 장악하고 진압작전 종료(새벽 5시10분).’
14일 광주 서구 5·18문화관 내 5·18민주유공자유족회 사무실. 정수만(鄭水萬·56) 유족회장이 자신의 노트북 컴퓨터에 5월항쟁 마지막 날인 ‘27일’을 입력하자 당시 계엄군의 무력진압 상황이 시간대별로 모니터에 띄워졌다.
정 회장이 ‘80년 5월 광주’의 모든 자료를 컴퓨터에 담아 정리한 데이터베이스(DB)의 일부다. 유족회장을 맡은 1993년부터 시작해 무려 10년 이상 공력을 들인 끝에 최근 이 작업을 완료했다. “그동안 추모제를 지내면서도 가슴 한 구석이 텅 빈 것 같았는데…. 이젠 5월 영령들 앞에 바로 설 수 있을 것 같아요.”
인쇄업을 하는 정 회장은 80년 당시 둘째 동생(당시 30세)을 잃었다. 그해 5월 20일 금남로에서 마지막으로 본 동생은 6월 2일 광주 외곽 군사격장에서 총에 맞아 가매장된 채 발견됐다. 이때부터 그는 ‘5·18 투사’가 됐다. 그는 유가족들의 ‘소복 투쟁’을 주도하고 5·18특별법과 국가기념일 제정을 이끌어 낸 ‘5·18’의 산증인이다.
“‘5월 정신’이 시간이 흐를수록 엷어져가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DB작업에 매달렸습니다.”
그가 완성한 DB는 5·18 당시 사망자 부상자 구속자는 물론 부상 후 사망자, 행방불명자 등 5·18 관련자 4700여명에 대한 기록이자 ‘80년 광주의 역사’다. 그의 노트북에 수록된 DB 용량은 200MB. 200쪽짜리 책 400여권 분량이다. DB작업을 하면서 용량 문제로 노트북 컴퓨터를 3대나 교체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자료 수집이었다. 전두환 정권은 물론 노태우 정권 때까지도 5·18 자료는 ‘금서(禁書)’에 가까웠기에 제대로 된 자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1988년 11월 국회 광주청문회 관련자료들이 그의 DB작업의 기초가 됐다. 특전사 전투상보, 2군 상황일지, 계엄상황일지, 20사단 충정작전, 육군 작전상황일지 등 5·18의 실상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이때 일부 공개됐던 것. 그는 이를 토대로 추가자료를 얻기 위해 정부기록보존소에서 며칠씩 밤을 새워가며 복사를 하기도 했다.
병원, 행정기관 등에서 당시 응급일지와 검시(檢屍)자료를 찾았다. 독일의 인권운동가가 상당한 양의 5·18관련 자료를 갖고 있다는 소식에 1997년 1월 자비로 독일을 찾았고, 이듬해엔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를 방문하기도 했다.
5·18 당시 사망자나 부상자 실태는 보상자료를 토대로 정리할 수 있었지만 행방불명자와 부상 후 사망자들의 상황은 자료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어 당사자나 가족들을 찾아 직접 증언을 들어야 했다.
DB에는 이렇게 발품을 팔아 모은 자료들이 세세하게 정리돼 있다. 사망자와 부상자의 나이, 주소, 5·18 당시 활동, 사망 및 부상 경위, 5·18 이후 생활 등 신상정보까지 포함돼 있는 것. 다만 개인신상정보는 인증절차를 거쳐야 열람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자료를 분석 정리하면서 새로운 사실도 밝혀냈다. 5·18 관련자가 지금까지 보상받은 4312명 외에 385명이 더 있다는 것과 5·18 피해자 30여명이 계엄당국에서 풀려났다가 다시 삼청교육대로 끌려간 사실을 확인한 것. 그는 5·18민주화운동 24주기를 맞아 12일 기자회견을 통해 그 명단을 공개했다.
그는 ‘진실을 말하지 않고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한 불행한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신념으로 이 작업을 해냈다고 한다.
“DB화를 마쳤으니 이제 한 짐을 덜었습니다. 2006년 5·18국립묘지에 기념관이 건립되면 소장 자료를 모두 내놓을 생각입니다. 그리고 또 내가 할일을 찾아봐야죠.”광주=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정수만 회장은
△1948년 광주 출생
△1967년 광주 조선대부속고등학교 졸업
△1978년 인쇄업 시작
△1981년 5·18 추모제와 관련해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10개월여 투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