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반 위의 구도자(求道者)로 불리는 백건우씨(58)가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작품을 들고 전국 투어에 나선다. 6월9∼14일 진행되는 이번 여정은 믿을 만한 동반자가 있어 고독하지 않다. 물고기가 헤엄치는 법을 알 듯, 쇼팽에 관해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폴란드 국립 바르샤바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안토니 비트가 총 6회의 콘서트에 동행한다.
그와 비트씨, 국립 바르샤바필의 쇼팽 콘서트는 지난해 9월 이들이 녹음한 ‘쇼팽 관현악과 피아노를 위한 전곡집’ 앨범이 데카에서 출반될 때부터 일찌감치 예고돼 팬들이 날짜를 손꼽아가며 기다려온 연주회다.
백씨와 비트씨는 1993년 낙소스 사에서 발매한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협주곡 전곡집으로 프랑스 디아파종 금상을 수상했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총 18개의 협주곡에서 함께 호흡을 맞춰오면서 ‘찰떡 앙상블’을 자랑한다. 이들의 쇼팽 앨범은 백씨 특유의 과부족 없는 ‘침착한 달콤함’과 의식적인 매끈함만을 추구하지 않는 타건(打鍵)의 촉촉함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앨범은 지난해 한 음악전문지가 평론가들과 음악 칼럼니스트들의 의견을 모아 선정한 ‘2003 베스트음반’으로 뽑혔다.
10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국립 바르샤바필과 두 사람이 이번에 선보일 레퍼토리는 쇼팽의 협주곡 2번 f단조.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에 작품이 삽입되기도 했던 폴란드 현대작곡가 보이체크 킬라르의 ‘오라와’ 서곡도 선보인다. 덧붙여 지방 공연에서는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비창’, 12일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연주회에서는 쇼팽 폴로네이즈 A장조와 ‘크라코비아크’ 작품 14 등이 연주된다.
지방공연은 6월9일 통영시민문화회관, 10일 울산광역시 문화예술회관, 11일 충남 천안 백석대 백석홀, 12일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13일 대구오페라하우스, 14일 광주문화예술회관으로 이어진다. 공연시간 오후 7시반. 3만∼18만원. 031-396-9336, 1588-7890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백건우 인터뷰▼
―쇼팽이 젊어서 살았던 바르샤바의 악단과 쇼팽을 협연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
“폴란드에서 여러 차례 콘서트를 가졌지만, 폴란드인들은 쇼팽의 음악을 듣고 ‘잘 했다’ ‘못 했다’로 평하지 않는다. 반드시 연주의 특징을 구체적으로 잡아내 평한다. 그 정도로 쇼팽의 음악은 폴란드인의 가슴과 몸 속 깊이 배어 있다.”
―그런 폴란드의 국립악단이 쇼팽 협연자로 백건우를 택했는데….
“지난번 앨범 녹음 때 콘서트마스터(대표 악단원)가 ‘마음대로 쳐라, 우리가 얼마든지 맞춰주겠다’라고 얘기했다. 쇼팽 연주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솔리스트에 대한 신뢰의 표현으로도 생각했다.”
―쇼팽의 피아노협주곡 두 작품 중 1번이 더 유명한데 이번 순회연주에서 2번을 고른 까닭은.
“우선 고국에서 2번을 연주한지 너무 오래되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작품의 매력을 꼽자면, 영화 ‘트루먼 쇼’의 로망스 장면에 삽입됐던 1번의 중간 악장도 아름답지만 2번의 달콤한 2악장도 이루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답다.”
―쇼팽의 음악은 대중적이면서도 피아니스트들에게는 언제나 큰 숙제라고 들었다.
“쇼팽은 피아니스트에게 고향과도 같다. 항상 전인미답의 레퍼토리를 찾아 헤매다가도 결국은 쇼팽으로 돌아오게 되고, 항상 탐구할 거리가 남는다.”
―고국 연주 때마다 지방 순회연주를 빼놓지 않는데….
“한국 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문화분권(文化分權)의 의미는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수준 높은 문화에 대한 요구는 대도시를 넘어 평준화되고 있다. 악기나 시설 등 공연여건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좋아지고 있다. 여러 도시에서 쇼팽의 아름다운 선율을 공유할 수 있다는 데 기대와 흥분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