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서안화차’에 등장하는 토용을 제작한 화가 임옥상씨(오른쪽)와 극 중 찬승 역으로 출연하는 이명호씨. 토용들은 이씨의 얼굴을 모델로 만들어졌다. 권주훈기자
연극 ‘서안화차’(연출 한태숙)의 마지막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다. 불이 들어오면 마치 진시황릉처럼 무대가 거대한 토용(土俑)들로 가득 찬다. 무언가를 응시하는 듯한 토용들의 눈은 타악그룹 공명의 음악과 신비스런 조명과 어우러져 오랫동안 잔상을 남긴다.
연극 무대에 풍부한 음악과 조형적 요소를 활용해온 연출가 한태숙씨는 2∼3분에 불과한 엔딩 장면을 위해 민중미술 화가 임옥상씨에게 20여개의 토용 제작을 의뢰했다. 토용들은 모두 찬승 역의 배우 이명호씨의 얼굴과 닮아 있다. 토용은 주인공 상곤(박지일)이 동성애 상대인 찬승에게 쏟아붓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의 집착을 상징한다.
극단 목화 출신의 배우 이명호씨는 “조각가를 비롯한 예술가들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작품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며 “내 얼굴과 몸을 그대로 본 뜬 수십개의 토용들과 연기를 하는 기분은 왠지 묘하다”고 말했다.
무대미술을 맡은 임옥상씨는 “93년 중국 시안(西安)의 진시황릉에 갔을 때 무덤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을 모델로 만든 조각상의 거대한 전시장인 듯해 충격을 받았다”며 “불사(不死)를 꿈꿨던 진시황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죽여서 토용으로 만들어 영원히 간직하려는 찬승의 욕구는 영혼불멸을 추구하는 유한적 인간의 부질없는 대응방식으로 서로 통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미대 재학시절 연극반에서 활동했던 임씨는 지난해 초연된 ‘서안화차’의 조각상 작품으로 올해 초 제 40회 동아연극상 무대미술상을 받았다. 이번 재공연을 위해 그는 8개의 조각상을 추가로 제작했다. 임씨는 “전시장안에 전시된 미술작품과 달리 연극에서는 조각품이 배우의 연기와 음악, 조명, 시간의 흐름 속에서 동적으로 생생하게 해석되고 재창조돼 말할 수 없는 희열과 환희를 가져다 준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동안 화단에서는 작업 외의 다른 일을 하면 ‘외도’처럼 보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번 작품을 계기로 국내 예술장르의 ‘수평적 교류’가 좀더 활발히 이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30일까지 화∼금 오후 8시, 토 오후 4시 8시, 일 오후 4시 서울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 02-3672-3001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